‘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91세로 타계한 배우 백성희 씨의 12일 영결식에서는 소리꾼 장사익의 애절한 목소리에 실려 ‘봄날은 간다’가 울려 퍼졌다. 고인이 연극 ‘3월의 눈’에서 연기했던 이순이 흥얼거리던 노래이자 고인의 애창곡이다.
그는 88세에도 무대에 섰던 ‘연기의 정석’이자 우리 연극계의 산증인이었다. 빈소를 지키던 후배 손숙은 “불과 얼마 전 요양병원에 계신 선생님을 뵈러 갔을 때만 해도 뽀얗게 분을 칠하고 립스틱을 바른 얼굴로 맞아줬다”며 “여배우로서 자존심이 강한 분이었기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고 전했다.
그의 회고와 대담 등을 엮은 책 ‘백성희의 삶과 연극, 연극의 정석’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두 편의 영화 출연을 ‘일탈’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연극이 영화보다 나은 예술이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연극만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 영화들이 ‘유전의 애수’, 또 한 작품이 ‘봄날은 간다’라는 게 공교롭다.
10일에는 영국의 세계적인 팝스타 데이비드 보위가 69세로 세상을 떴다. 중고교 때 그의 음악과 모습에서 느낀 생소함과 충격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센세이셔널한 패션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결합한 글램 록의 창시자로 시대를 앞서갔다. 평생 애창곡이 서너 곡인 음치가 받아들이기에 그는 너무 먼 존재였다. 그렇게 기억에서 사라졌던 보위는 “18개월간 암과 용감하게 싸운 끝에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는 외신의 한 문구와 함께 내게 돌아왔다.
그의 말년은 치열했다. 2014년부터 암과 싸운 그는 죽기 이틀 전 새 앨범을 내놓기도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지나갔다. 그는 코앞에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예측했을까, 그렇다면 그 짧은 인생의 봄날을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보냈을까.
‘의학계의 시인’으로 불리다 2015년 82세를 일기로 타계한 올리버 색스의 고백은 그 마지막 순간에 대한 또 하나의 추측이 될 수도 있다. 그해 2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그는 안암(眼癌)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이렇게 썼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출 순 없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이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한평생을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한 특혜이자 모험이었다고 느껴진다.”
최근 출간된 그의 자서전 ‘온 더 무브’는 동성애와 약물 남용, 안면인식 장애 등 여러 위기와 좌절을 인생의 봄날로 바꿔 갔던 삶을 보여준다. 그는 혼자서 봄기운을 즐긴 게 아니라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싸웠다. 이 기록은 자서전류에서 흔히 발견하는 상투적인 과장이나 미화가 빠진 대신 소박함과 솔직함으로 가득하다. 때로 뉴욕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채 차를 한잔 나누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바람 때문일까? 당신의 봄날은 어느 때였나, 흔들리는 인생의 배에 닥친 위기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나,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싶다.
유행가 가사처럼 예전엔 몰랐다. 90세가 넘었지만 후배와 만나면서 분을 바르고 립스틱을 칠하는 노배우의 마음을 몰랐다. 자신의 굴곡 많은 삶을 아름다운 행성에서 누린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으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몰랐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하는 이 구절이 가슴에 와서 콕콕 박힐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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