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굿바이 ‘쌍문동 10통 2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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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 부음기사에 실린 이름은 낯설어도 사진 속 얼굴이 친근하다. 지난주 69세 나이로 별세한 영국 배우 앨런 리크먼.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아내 몰래 애인에게 줄 목걸이를 고른 뒤 ‘미스터 빈’과 선물 포장을 놓고 실랑이를 벌인 남편이다. ‘해리 포터’에서는 음울한 스네이프 교수로 열연했다. 이름은 가물가물했어도 예전에 알던 사람의 타계 소식을 들은 듯 허전했다.

▷늘 주역만 맡는 톱스타는 별세계에 있는 듯 멀게 느껴지는 데 비해 짧은 시간에 머리에 각인되는 연기를 보여주는 명품 조연은 훨씬 살갑게 다가온다. 주인공 못지않게 관객들 마음을 훔치는 명연기를 펼치는 배우를 ‘신스틸러(scene stealer)’라 부른다. 작년 9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1회 신스틸러 페스티벌에서 만년 조역 배우들이 레드카펫에 나란히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그제 막 내린 ‘응답하라 1988(응팔)’은 모처럼 2030, 5060세대 구분 없이 사랑받은 드라마였다. 인기 코드인 ‘막장’을 버리고 사람의 향기를 담아내 ‘세대 통합’에 기여했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응팔’ 성공 비결로 신스틸러의 캐스팅을 빠뜨릴 수 없다. ‘치타여사님’을 포함한 보라엄마 선우엄마 등 아줌마 삼총사에 모자란 듯 보여 정이 가는 정봉이, 흥 많은 쌍문고 학생주임, 절제된 연기의 꼬마 진주 등. 찾아보면 주변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웃으로 완벽 빙의한 그들을 더는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드라마와 영화의 완성도는 주인공과 더불어 그를 뒷받침하는 조연들이 얼마나 당당한 존재감을 보여주느냐에 좌우된다. ‘응팔’에서 시청자들이 쌍팔년도 그때 그 시절, 쌍문동 10통 2반 이웃들의 가슴 뭉클한 사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도 다양한 신스틸러가 저마다 제 몫을 해낸 덕이다. 그래서 광고 개수로 따지면 7수생 출신 정봉이(안재홍)가 주인공인 덕선(혜리)과 택(박보검)에 이어 3위란 소식이 반갑다. 현실에서도 응달에 선 조역들이 제대로 조명받고 대접도 받는 세상이 된다면 좋으련만.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응답하라1988#응팔#신스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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