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 모양 안경을 쓰겠노라.’ 안경을 비롯한 패션 소품이 돋보이는 그림을 본 후 마음먹었지요.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1699∼1779)이 그린 ‘자화상’인 줄도 몰랐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랜 결심을 실행할 기회가 며칠 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안경이 아닌 돋보기를 써야 한답니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어 ‘꼭 그 모양’ 안경테만 만지작거리다 안경점을 나왔습니다.
샤르댕은 절대 왕정이 해체된 후 귀족 중심의 살롱 문화가 꽃피었던 시기 프랑스 화가였습니다. 동시대 화가들은 관능적인 신화와 향락적인 사랑을 소재로 푸짐한 잔칫상 같은 미술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행보는 달랐습니다. 단출한 건강식 같은 그림에 평범한 사물과 소박한 일상을 담았지요. 특히 정갈한 주방기구와 간소한 식자재를 그린 정물화는 높게 평가됩니다. 모든 사물에 그들만의 신비와 숨결을 부여했거든요. 그의 정물화에서 찻잔과 자두는 도구나 먹을거리가 아닙니다. 모두 빛나는 존재입니다.
‘자화상’ 속 화가는 70대입니다. 지상에서 허락된 시간이 7년 남짓 남았을 무렵입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디드로까지 ‘위대한 미술가’로 칭송한 그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노년은 보통 사람의 말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건강상의 문제로 고통받았어요. 시력은 실명 상태에 가까웠고, 두통이 심했습니다. 낡은 주전자에 깃든 시간과 작은 살구를 감싼 표면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오래 사용했던 유화 물감이 두통의 원인이었습니다.
‘자화상’은 화가의 문제적 상황을 보여줍니다.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썼습니다. 그림 재료도 파스텔로 바꿨습니다. 50년 넘게 사용한 유화 물감을 포기할 만큼 두통이 끔찍했답니다. 약해진 체력을 추위에서 보호하고자 머리에 반다나를 쓰고, 목에 스카프를 둘렀습니다. 화가는 직면한 곤란함을 이렇게 정면 돌파하며 작업을 이어 나갔던 모양입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타계하던 해 제작한 또 다른 자화상에 등장합니다. 그림 속 노(老)화가는 변함없는 차림으로, 여전히 작업 중입니다.
그의 ‘자화상’이 새롭게 보입니다. 동그란 코안경이 현재의 형편을 받아들이는 담담한 태도로 여겨집니다. 멋진 패션 소품들이 문제 상황을 풀어가는 최선의 실천으로 생각됩니다. 부쩍 나빠진 시력과 그 원인에 안달복달했던 저는 비로소 문제투성이 현재를 똑바로 마주해야 할 이유와 용기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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