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점검/미술계 인력시스템]<상>감정도 관리도 주먹구구
국내 베테랑 전문가 20∼30명 불과… 공인 감정 기구-감정사制 도입 절실
작품 운송-보관 체계도 강화해야
한국화랑협회가 감정한 이중섭 화백의 ‘소’ 위작(위 사진). 2005년 서울옥션이 매물로 올려 낙찰됐으나 화랑협회가 문제를 제기해 검찰 수사까지 이어졌다. 2007년 서울옥션에서 역대 최고가로 낙찰됐던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아래 사진)는 다음 해 한 미술잡지 기사를 계기로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법원은 1년 10개월 뒤 “진품으로 추정되나 위작 의혹 제기도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동아일보DB
《 외화내빈(外華內貧). 한국 미술계의 현 상황을 요약하는 말이다.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사인 서울옥션의 연간 총거래액이 지난해 최초로 1000억 원을 돌파하는 등 시장 규모는 급성장 중이다. 하지만 이달 초 K옥션이 이우환 화백 작품이라고 위조 감정서가 붙은 그림을 매매한 것에서 보듯 시스템 운영의 내실은 규모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미술시장의 신뢰도를 흔드는 허술한 인력 시스템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
알렉산더 콜더(1898∼1976). ‘모빌’의 발명자로 잘 알려진, 키네틱(kinetic·움직이는) 아트를 선도한 미국 조각가다. 수년 전 국내 경매를 통해 그의 모빌 작품을 낙찰받은 컬렉터 A 씨는 2012년 내한한 콜더의 외손자 알렉산더 스털링 콜더 로어 씨를 초청한 자리에서 뜻밖의 곤욕을 치렀다. 콜더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그가 작품을 한동안 뜯어보더니 “교묘하게 만든 위작”이라 단언했기 때문이다.
A 씨의 항의를 받은 경매사는 즉시 낙찰금을 반환했다. 경매사가 상당한 ‘위로금’을 얹어주며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말아 달라”고 당부해 흐지부지 넘어갔지만 조금씩 소문이 퍼졌다. 한 사립 미술재단 관계자는 “2005년 이중섭 그림 위작 논란에서 드러난 것처럼 작가 유족 의견이 절대적 진리일 수는 없지만 콜더 재단 정도면 전작 도록을 꾸준히 개정해왔을 것이므로 이사장 발언의 신뢰성을 의심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근 다시 불거진 고가 미술품 위작 의혹에 대해 한 원로 작가는 “진위를 가려낼 사람이 없는데 진위 논란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 국내 미술계에서 작품 감정 실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베테랑 전문가는 20∼30명 정도다. 프랑스나 미국처럼 공인 미술감정사 제도를 갖추자는 얘기가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소수의 비공인 전문가가 감정을 주도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국미술품감정협회 관계자는 “현재 한국 미술품 경매 시장 매출 규모는 2000억 원이 안 된다. 몇 해 동안 많이 성장했지만 미술품 진위 판별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인력을 확충할 만큼 큰 규모의 시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해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알제의 여인들’(피카소) 한 점이 받은 낙찰가가 1960억 원이었다.
사설 화랑 운영자들이 감정에 참여하는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의 여지가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서구에서도 감정 분야 주축은 베테랑 화랑 운영자들이다. 한 번 실수하면 업계에 발붙일 수 없기 때문에 ‘목숨 걸고’ 감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판정 오류는 간혹 나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결국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국공립 미술기관이나 재력을 가진 사설 미술재단이 장기적 목표를 설정해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베테랑 감정 전문가 의견을 확인하고 견제할 재료분석 전문가와 신진 감정전문가 시스템을 더 탄탄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전시나 경매 때 작품 운송과 보관을 책임지는 컨서베이터, 보수와 전시 이력을 관리하는 레지스터 등의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누가 봐도 명백히 훼손돼 개칠(改漆)한 흔적이 보임에도 갤러리나 소장자가 ‘아무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은 공신력 있는 제작유통 기록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미국 릭턴스타인재단은 작품뿐 아니라 시기별 재료 잔해 샘플까지 분류해 보관한다. 당장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없지만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할 작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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