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작가는 “연필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중복된 선으로 더듬더듬 형태를 수습한 흔적이 그림을 이루는 과정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아크릴화 ‘안개의 정원’.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 가지 색만 써서 이미지를 조직하는 작가는 드물지 않다. 다음 달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금호 영 아티스트 2016’ 참여 작가 박광수 씨(32)의 온통 새까만 아크릴화는 첫눈에 그리 각별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새 앞에 서서 붙들린 채 한참 시간이 간다. 우울함과 경쾌함의 기이한 공존. 지난 주말 전시실에서 만난 박 씨는 “군 복무를 하면서 흑백만으로 그리는 법을 익혔다”고 말했다.
“미술 공부를 하다가 군에 입대한 많은 이가 경험하듯, 그리고 싶은 건 자꾸 생각나는데 손에 쥔 건 종이와 검정 볼펜뿐인 시간이 길게 이어졌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뭐든 그려낼 수 있는 단출한 작업 태도를 제대 뒤에도 유지하고 싶었다. 원래부터 채색보다 드로잉 작업을 좋아한 까닭도 있다.”
붓선인지 펜선인지 아니면 판화인지, 캔버스 위 까만 선의 정체를 얼핏 봐선 알아채기 어렵다. 그는 직접 제작한 ‘스펀지 펜’을 썼다. 3년 전부터 작업 크기를 키우면서 아크릴 물감으로 어떻게 ‘펜의 정서’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해 만든 도구다. 딱딱한 스펀지를 잘라 나무젓가락에 붙인 스펀지 펜이 작품마다 수십 개씩 소모된다.
“붓과 펜은 선의 정서가 다르다. 내 캔버스화는 아직 종이 위 펜화를 키운 성격의 작업이다. 펜이 가진 균일한 강약을 살리고 싶었다. 사이즈를 키워 보니 종이 펜화 때와는 달리 그리면서 내 ‘몸’을 의식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 공개한 ‘좀 더 어두운 숲’ 연작은 무성한 나무 그늘 사이를 거니는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가지 새로 문득문득 쏟아지는 햇빛처럼 존재와 부재가 시시때때로 교차한다.
“아버지 없이 저를 키워주신 어머니께서 4년 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중환자실과 고시원을 오가며 전시를 준비하다 보니 악몽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더라. ‘팽이처럼 무의미하게 지내느니 혼자 살아가는 내 상황을 그림으로 기록해보자’ 생각했다. 윤곽을 잡은 뒤 여백을 선으로 채우며 형태를 사라지게 했다. 살아가는 존재가 어떻게 사라지는가, 그에 대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답이 이 그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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