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강남구 화실에서 만난 이현세 화백(60)은 ‘전쟁’이란 말을 꺼냈다. 최근 네이버 웹툰 연재를 시작한 ‘천국의 신화’ 6부(봉황의 날개)에 대한 치열한 출사표로 느껴졌다.
‘천국의 신화’ 자체가 전쟁 같은 작품이다. 1997년 당시 가장 ‘핫한’ 만화가였던 그는 한민족 신화와 상고사를 소재로 100권 분량의 대작을 발표했다. 같은 해 청소년보호법 시행 뒤 만화 속 원시인류의 성행위 장면이 음란물이라는 이유로 기소됐다. 표현의 자유 논쟁이 일었다. 6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2003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처음으로 생각해봤어요. 내 만화에 독이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결국 나를 돌아봤어요. 극복하는 데 가족애가 컸어요. 딸이 초등학생이었는데, 자칫 ‘아빠가 음란 폭력물을 그린다’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빠를 믿어줬어요.”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 그는 하늘을 쳐다봤다. 정점에 있던 그는 이렇게 반짝임을 잃었다. “전쟁 같은 시간 뒤 어느새 50대가 됐다”고 그는 말했다. “판결 후 ‘천국의 신화’를 그리기 싫더군요. 저는 신이 나서 광대처럼 뛰어다니는 작가예요. 그 신명이 죽었으니. 다만 그리다 마는 것도 아닌 것 같았어요. 2007년까지 5부(47권)는 어떻게 해서든 마쳤죠.”
9년 만에 6부 연재를 시작한 이유는 ‘도전’ 때문이다. “네이버에서 찾아와 ‘천국의 신화’를 연재하자고 했어요. 체력적으로 할 수 있을지, 수많은 댓글 속에서 꿋꿋이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었죠. 1년 정도 고민했는데, 갈증이 생겼어요. 젊은 작가들과 경쟁해보고 싶었죠.”
한민족의 시원인 배달국 1대 환웅 거발한(1부), 치우천왕과 헌원의 전쟁(2부), 견우직녀 설화를 소재로 한 가루치(3부), 마지막 환웅 거불단(4부), 1대 단군 검마르(5부)에 이어 6부는 위만조선을 다룬다. “제국 순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그려왔어요. 위만부터 시작해 고조선 멸망 뒤 부여 옥저가 있던 시대로 갈 겁니다. 이 시대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와 유사해 보여 작가로서 탐이 납니다.”
그는 역사 논란을 의식한 듯 자신의 작품을 ‘판타지’로 규정했다.
“상고사 역사서 ‘환단고기’ 등을 참고했는데, 역사학계는 ‘위서(僞書)’라고 보죠. 반대로 치우가 헌원에게 패하는 것으로 그리자 재야 사학자들은 ‘왜 치우가 패하냐’며 비난하더군요. 만화가 역사 그대로면 제목이 ‘천국의 역사’겠죠(웃음). 판타지를 그리는 겁니다. 역사에서 자유롭고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죠.”
그는 연필에 A4용지를 둘둘 말았다. “예전처럼 종이에 그린 후 스캔한 뒤 PC에서 색깔을 넣는 식으로 작업합니다. 웹툰을 연구했어요. 출판만화가 공간예술이라면 웹툰은 스크롤로 내려보는 시공간 예술이죠. 연출이 중요해요. 그림체에도 변화를 줬습니다. 강하게 직선으로 그렸는데, 이젠 전체적으로 둥글게 그립니다. 매번 똑같이 그리는 건 작가로서 힘들고 지겨운 일이죠.”
이 화백은 “독자로부터 ‘이현세 제자들이 그렸다’는 오해를 산다”고 했다. “독자가 새 작품을 보고 ‘이현세가 그린 게 아니다’라고 의심하면 저는 성공한 것”이라며 웃었다.
이 화백은 행복하고 컨디션이 좋을 때가 ‘그리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일흔이 되면 손자 손녀를 위해 그릴 수도 있고, 함께 늙어간 사람들을 위로하는 만화가 될 수도 있고…. ‘천국의 신화’에서는 신라, 발해까지 다룰 생각이에요. ‘천국의 신화’를 통틀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한민족의 자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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