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최근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재출간돼 순식간에 초판(4000부)이 매진되며 화제를 모은 가운데 국내에서도 ‘나의 투쟁’(동서문화사)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19일 동서문화사에 따르면 2014년 발간돼 월평균 500권가량 팔리던 이 책은 두 달 전부터 주문이 쇄도해 지난해 11월 초 찍은 1만 부가 다 팔려 이달 초 1만 부를 추가로 인쇄했다. 두 달 사이 2만 부를 찍은 것. 출간 1년이 넘은 책의 판매가 20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이례적이다.
1925년 나온 ‘나의 투쟁’은 히틀러의 생애와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 전체주의 수행 계획, 세계 정복 야망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이달 8일 독일에서 두 권으로 나온 책에는 히틀러 사상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담은 주석이 방대하게 실렸다. 동서문화사의 책도 독일 정치 칼럼니스트와 히틀러 전문가가 쓴 비판적인 글과 함께 미국 국립공문서보관소에 있던 히틀러의 미편집 원고를 추가로 실었다.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는 “기업에서 300∼500권씩 사겠다는 주문이 이어지고 독서동호회에서도 100∼200권씩 구매하고 있다”며 “이 추세대로라면 다음 달 1만 부를 더 찍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교보문고가 이 책의 구매자를 분석한 결과 남성이 80.6%로 압도적이다. 연령별로는 40대 (27.5%)가 가장 많고 30대(22.7%) 20대(22.1%) 50대(17.2%) 순이다. 해외에서 화제가 되면서 공부하기 위해 책을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고 대표는 “방향은 잘못됐지만 히틀러가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게 한 능력이 탁월했던 만큼, 임직원이 일체감을 이뤄 성과를 내고 싶은 기업들이 연구 차원에서 읽어 보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히틀러의 전모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독일 재출간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자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 투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히틀러는 전쟁과 학살이라는 대재앙을 초래했지만 강력한 독일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강했던 인물”이라며 “사회가 분열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등 답답한 현실에서 강력한 국가를 갈망하는 욕구가 표출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극우 성향이 활발해지는 사회상이 반영된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독일에서 금서였던 ‘나의 투쟁’은 바이에른 주 정부가 판권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히틀러가 사망한 지 70년이 지나 올해부터 저작권이 소멸됐다. 독일의 재출간본은 선주문만 1만5000부에 달했고 초판이 순식간에 동나면서 정가 59유로(약 7만8000원)인 책이 독일 아마존의 중고 책 코너에서 385유로(약 50만5000원)부터 거래되고 있다. 독일 재출간본을 들여오려는 국내 출판사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돈을 내고 책을 사는 것은 매우 적극적인 행동인데 반인륜적 인물이 쓴 책을 찾는 것은 ‘일베’를 포함해 최근 몇 년간 극우 성향이 늘어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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