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義城) 사람이 닭을 길렀다. 암탉 세 마리가 수탉 한 마리를 따랐는데 이웃집 닭이 와서 싸워 수탉을 죽였다. 암탉 두 마리는 새 수탉을 따랐지만 한 마리는 그놈만 보면 피했다. 암탉은 알을 12개 낳았고, 잘 품어서 모두 부화시켰다. 이게 1월의 일이었다. 암탉은 새끼들을 부지런히 거두어 먹였는데, 반드시 부엌이나 뒷간 옆에서 먹이를 찾았다. 뒷간에는 구더기, 부엌에는 밥풀이 있기 때문이었다. 2월이 못 되어 새끼들은 혼자 먹이를 찾을 정도로 자랐지만 암탉은 새끼들 곁을 떠나지 않고 알을 더 낳지도 않았다. 어느 날 주인이 병아리 한 마리를 시장에 내다 팔아 소금을 사와서 장을 담갔다. 소금이 부족해 장맛이 싱겁자 주인이 ‘두 마리를 더 팔아 소금을 보태야겠군’ 했는데 장항아리가 갑자기 저절로 깨졌다. 암탉은 새끼들을 끌고 와 그것을 먹였다.
5월이 되자 새끼들은 어른 닭만큼 자랐다. 어느 날 저녁, 암탉과 새끼들이 지붕으로 올라갔다. 이웃집 닭장을 노려보다가 암탉이 날아가니 새끼 11마리가 모두 뒤따라 날아갔다. 곧바로 이웃집 닭장으로 내려앉아 암탉이 수탉의 목을 쪼아 늘어뜨리고 11마리의 새끼가 차며 쪼아대니 마침내 이웃집 닭이 횃대 아래로 떨어졌다. 엎치락뒤치락 싸우면서 문 밖으로 나오자 주인이 말리려 들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암탉이 수탉과 싸우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니 말리지 말고 그냥 보시지요.” 이윽고 수탉이 죽자 암탉은 제 집으로 돌아가다가 문에 이르러 죽었다. 새끼들은 어미가 죽는 것을 보고 다투어 문지방에 몸을 던져 죽었다.
김약련(金若鍊·1730∼1802) 선생의 ‘열계전(烈鷄傳)’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죽은 남편의 복수를 했으니 ‘열계(烈鷄)’라 불러 마땅합니다. 닭의 머리가 나쁘다는 건 편견입니다. 잊을 수 없는 일은 잊지 못하고 잊어서도 안 되는 법입니다. 암탉이야 그렇더라도 새끼들의 행동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선생은 이렇게 평합니다.
짐승은 말로 새끼를 가르칠 수 없는데 새끼가 어미의 뜻을 알고 어미의 절개를 배웠으니, 어찌 어미의 절개가 그들을 감동시켜 저절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豈非以其母之烈能相感, 而自然至此哉)? 아아 슬프다. 만약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닭은 짐승인데도 이와 같거늘 어찌 사람이 되어 닭만도 못하단 말인가” 하면서 반드시 스스로 반성하고 힘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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