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한국에서 처음 설날 준비를 할 때였다. 여섯 째, 일곱 째 숙모랑 부엌에서 여러 종류의 부침개를 만들었다. 남편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지만, 명절이나 제사 때면 친척들을 접대해야 해서 부인을 돌볼 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서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남편은 부엌에 갇혀 밀가루투성이가 돼 있는 내게 ‘힘들지 않으냐’는 말조차 걸어주지 않았다. 옆방에선 남자들끼리 술잔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명절날의 이런 분위기는 여전하다. 일반 제삿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나가서 친척들이랑 인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싶은데, 항상 음식을 하느라 바쁘다. ‘여자들이 죽도록 고생하는 날이어서 제삿날이라고 하는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남편 집이 한국에서도 유독 제사 의식을 엄격히 하는 편인 것 같긴 하다.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만 조상에게 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항상 내게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힘겹게 음식 준비를 한 며느리들은 제사를 모시는 거실엔 막상 들어가지도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한다.
일본의 명절과 제삿날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음력을 사용하지 않는 일본에서는 1월 1일부터 3일까지가 설 연휴다. 설날엔 한국처럼 친척들이 다 모이지 않고 가족끼리 오붓하게 시간을 보낸다. 음식을 4, 5명 정도 것만 준비하니 크게 번거롭지 않다. 설 연휴 때 먹는 ‘오세치 요리’는 2, 3시간 만에 만든다. 고급 3단 도시락 통에 설 연휴 동안 먹을 반찬들을 준비한다. 일본에서도 주부가 음식을 만들곤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편이 아니어서 크게 힘들지 않다. 제사도 1년, 3년, 5년 이런 식으로 1년을 걸러서 지낸다. 주로 절에서 제사를 모시며, 업체에서 만든 고급 도시락을 먹기 때문에 그리 번거롭진 않다.
그래서 일본인으로서 한국 여자들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 허리가 아프고 힘들어도 조상과 친척들을 위해 많은 양의 음식들을 묵묵히 장만하니 말이다. 맛있는 음식을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 하고, 친척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면 남은 음식들을 바리바리 챙겨준다. 가족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훈훈하지만, 여자들이 겪는 수고로움은 너무 크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부엌일은 여자들의 몫’이라는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 1970년대 일본에서 크게 논란이 됐던 한 TV 광고가 있었다. 카레라이스 광고였는데, 여자가 앞치마를 입고 ‘나는 (카레를) 만든 사람’이라고 말하고, 숟가락을 들고 있던 남자는 그 옆에서 ‘나는 먹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광고를 본 일본 사람들은 ‘남녀 차별적인 상황 설정’이라며 발칵 뒤집어졌다. 이후 남녀평등에 대한 논의는 더욱 활발해졌다. 회사에서도 여직원에게만 차를 내오게 하는 일이 없게끔 직접 차를 뽑아 먹을 수 있도록 자판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남편 집에선 증조할머니 때부터 대대로 남자는 부엌에 발도 못 디디게 하셨단다. 남편은 출근 전 신문을 읽고 나면, 접지도 않고 넓게 펼쳐 놓은 채로 나가곤 했다.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국수를 먹는 자리가 있었을 때도 내가 직접 음식을 갖다 주지 않자 앉아만 있다가 나가버렸다. 그때 무척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면서 약간의 변화가 느껴진다. 남편은 내가 아침밥을 너무 많이 한다는 이유로 쌀을 씻고 밥을 짓는 일을 해주고 있다. 커피도 타준다. 일본에 계신 우리 부모님이 생각났다. 요리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어머니랑 부엌에 나란히 서서 요리를 했고, 원두커피를 타주는 것도 아버지 몫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들이 며느리를 위해 부엌일을 도와주는 것은 싫어하고, 사위가 딸을 도와주는 것은 대환영하는 어머니상(像)을 주변에서 많이 봐 왔다. 하지만 요즘엔 어머니들의 마음도 점점 개방되고 있는 것 같다. 남자가 부엌에 드나드는 것에 대해 크게 반감을 갖지 않는 것 같다.
남자 셰프들이 대세인 시대에 온 국민이 남자 여자 따질 것 없이 요리에 재미를 붙이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설 명절 때는 부엌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여자군단을 위해 위로의 한마디와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주길 바란다. ※야마구치 히데코 씨는 일본 출신으로 1989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 유한대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이주여성공동체 ‘미래 길’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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