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읍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2월이 되면 ‘동주’라는 영화가 개봉한다. 미리 밝히지만 이 글은 영화의 감상평도, 선전 용도도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의 이름을 다시 들으니 반가울 뿐이다. ‘동주’라니 이 얼마나 고운 이름일까. 마치 겨울의 구슬 같기도 하고 먼 지명 같기도 하고 참한 여인네의 이름 같기도 하다. 시인 ‘윤동주’에서 성을 빼고 ‘동주’라고 이름을 다시 불러보자. 이 시인은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겨우 책 속에서 만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해맑은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보고 들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맞다. 그는 가깝고 그리운 한 사람이다.
제 스스로 맑고 고운 이름의 사람은 다른 맑고 고운 이름들을 사랑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상의 고운 한 사람을 알아보고, 고운 것들이 주위에 모여 들었다고 해야 옳겠다. 시인의 곁에 찾아든 맑고 고운 이름들을 하나하나 나열해서 만든 작품이 바로 ‘별 헤는 밤’이다. 이것은 별의 시이기 이전에 이름의 시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총출동하는, 아름다움의 블록버스터급 작품이다.
곱고 아름다운 것들이 잔혹한 세상과 너무 거리가 멀지 않으냐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것들은 이 세상과 가깝지 않기 때문에 곱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겨우 훔쳐볼 수만 있다. 눈이 부신 것은 잠시 잠깐이어서 가능하다. ‘동주’를 매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를 떠올리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맑아진다. 시도, 고운 이름도,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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