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내가 자유주의자라는 걸 전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때 당신이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나는 결코 자유주의자가 아니에요. … 나는 하나의 주의(ism)라고 부를 수 있는 명확한 정치철학이 없어요.”(177∼178쪽)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이 말은 본인이 어떤 학자인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인 것 같다. 책은 그가 1964년 독일 ZDF방송과 나눈 것을 비롯한 언론 인터뷰 4편을 묶은 것이다. 긴 문장과 깊은 사상적 깊이 때문에 아렌트의 저작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언론과의 인터뷰, 즉 그의 글이 아닌 말을 듣는 것은 그의 사상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아렌트는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태생의 유대인으로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등의 저서를 통해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성으로 불린다. 4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말이 지금도 유효한 것은 그의 공정한 사상 때문이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인종적 배경을 가졌지만 어떤 이데올로기 앞에서든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다.
“누군가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척하며 민족에게 경의를 표하는 양 알랑방귀를 줄곧 뀌어대는 바람에 이런 공명정대함을 실행에 옮길 수 없다면, 그렇다면 세상에는 실행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을 거예요. 나는 그런 사람들이 애국자라고는 믿지 않아요.”(65쪽)
그가 인터뷰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사상이 아니라 사유다. 타인의 입장에 대한 사유, 자기 행위에 대한 사유가 없는 체제와 기능 위주의 사회에서는 나치와 같은 만행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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