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시간과 돈, 온도의 차이를 즐기며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30일 03시 00분


1981년 대학 진학과 함께 시작한 서울살이가 지난해로 34년이 됐다. 그간 전남 여수시와 경남 진해시에서 총 2번 지방 근무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지난해 7월 말부터 이곳 경북 김천시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지금 나의 인생 목표 중 하나가 서울로 돌아가지 않는 거다. 주변 사람들은 “지방살이가 어떠냐”고 묻는다. 나의 준비된 대답은 이른바, ‘삼차(三差)’다. 시차(時差), 환차(換差), 온도차(溫度差)가 그것이다.

김천은 사통팔달, 그야말로 교통의 요지다. 차를 몰고 2시간 이내에 서해안, 동해안, 남해안에 갈 수 있다. 좀 비싼 철도를 이용하면 말할 것도 없다. 대구, 대전은 지하철 타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가는 기분이다. 그래서 시차,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이 아니라 시간의 가치 차이가 있다.

김천에 이사 와서 처음 찾아간 곳은 김천 농산물경매장. 자두 5kg 1만5000원, 백도 5kg(13개 정도) 1만 원, 씨 없는 거봉 2kg(3송이) 1만 원, 총 3만5000원어치 과일을 샀다. 서울 강남 등심 1인분 값이다. 내가 이렇게 과일을 잘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특히 자두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원숭이’처럼 살자고 했다. 5일장에서 할머니들이 직접 따서 이고 나와서 파시는 복숭아의 그 진한 즙 향기에 갑자기 침이 돈다. 가격은 묻지 마시라, 선물받은 지인들의 인상이 두렵다.

지금 살고 있는 34평 아파트의 전세금은 1억4000만 원. 서울에 두고 온 같은 평수의 아파트에 비해 일단 체감 공간이 1.5배다. 집을 나서 7000보를 걸으면 직장이다. 출퇴근만으로도 운동이 되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말까지 난방하지 않고 자연광과 단열시공 덕으로 살았다. 서울에서는 매월 최대 30만 원 난방비를 물면서 껴입고 지냈다. 돈은 같은 한국은행권이지만 권역에 따라 분명히 환차가 있는 것 같다.

지방은 온도도 다르다. 대도시의 기온은 온도계가, 숫자가 이야기한다. 지방의 온도는 자연이 이야기한다. 꽃이 피고, 수목이 우거지고, 낙엽이 지고, 눈이 온다. 봄을 부르는 꽃은 목련이나 개나리가 아닌 매화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2008년 진해로 거처를 옮겼을 때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당시는 꽃피는 4월이었다. 원래 남쪽 태생이지만 그렇게 온도차가 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주말 서울 집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더워 죽는 줄 알았다. 김천 아파트의 창밖은 온통 논이다. 나날이 짙어가는 나락 색깔에 왜 추수를 하지 않는지 괜스레 내가 걱정한 적도 있다.

지방과 서울, 대도시 사이의 ‘3차’는 지방에서만 실감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목표가 3차를 즐기기 위해 ‘서울로 돌아가지 않는 것’으로 굳어지고 있다.

※필자(54세)는 서울에서 여성가족부 공무원, 외국계 회사 임원을 거쳐 경북 김천으로 내려가 대한법률구 조공단 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박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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