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현지 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마지막 국정연설에서 현재의 미국 경제를 ‘세계 최강’이라고 표현했다. 그 근거로 계속 늘어나는 일자리, 5%대의 낮은 실업률, 사상 최대의 자동차 판매 기록(2015년 기준) 등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많은 미국 시민은 여전히 불안하고 불만이다. 미국 경제의 성장이 ‘나와 내 가정의 풍요와 행복’으로 구현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국정연설에서 “새로운 기술들은 어떤 일자리도 대체할 수 있고,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이 아닌) 어디로든 이전할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내 임금을 올려 달라’고 요구할 협상력(지렛대)이 거의 없다. 모든 부(富)와 임금은 점점 더 (최고경영자 같은) 최상위 계층에만 집중된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는 좋아졌지만 고질적 불평등 문제는 개선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21세기 들어,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 문제는 미국 정치와 경제 담론의 중심에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예상 밖 1위’를 고수하는 것도, 민주당 경선에서 민주사회주의자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돌풍을 일으키는 것도 그 기저엔 ‘심화하는 불평등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와 무너지는 중산층의 불안’이 자리한다고 미 언론들은 분석한다. 기존 정치권, 이른바 ‘워싱턴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이 대표적 아웃사이더 후보들의 부상을 받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불평등 연구의 대가(大家)’ 중 한 명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73)의 신간 ‘미국 경제 규칙 다시 쓰기(Rewriting the Rules of the American Economy)’는 미국 경제의 불평등 원인을 파헤치고 구체적 해법을 제시한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그는 신간에서 “불평등 문제는 잘못된 경제정책을 선택하면서 심화됐다. 그 선택의 첫 단추는 1980년대 미국을 이끈 레이거노믹스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근로자 90% 이상의 실질임금이 제자리걸음이다. 최저임금 수준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오히려 40∼50년 전과 비슷하다. 미국 경제가 대다수 시민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경제가 ‘실패한 경제’다. 선택을 다시 하고 경제 규칙을 새로 쓰지 않으면 불평등의 굴레를 벗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레이거노믹스는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경제정책을 일컫는 표현인데 세출 삭감, 소득세 대폭 감세, 기업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공급 측면을 자극해 그 파급효과가 수요 증대로 이어지게 한다는 이른바 낙수 효과를 기대한 공급의 경제학이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생산성이 높아지면 노동자의 임금이 따라 올라가는 게 당연한 규칙이었는데 (레이거노믹스가 가동된) 1980년대부터 그 연관성이 약해졌다. 경제 규칙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단기 성과(이익)에만 집착하고, 금융 산업은 계속된 규제 완화로 ‘투기장’처럼 변하면서 경제 성장의 혜택이 기업 최고경영자와 대형투자은행 등에만 쏠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평등 문제를 그냥 놔두면 결국 장기 투자와 일반 근로자 임금은 실질적으로 줄어들어 경제 구조 자체가 부실화한다. 그러면 나라 경제 전체가 약해지고 성장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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