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교수 “강력한 리더십이 산업화 낳고, 산업화가 민주화 낳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4일 03시 00분


[요즘! 어떻게?]원로 경제학자 안병직 교수

《 원로-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여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 중견-어떤 단체나 사회에서 중심이 되는 사람. 사전적 정의와는 다르지만 이런 뜻을 추가해보면 어떨까요. ‘늘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는 사람.’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동아일보가 학자, 문인을 비롯한 문화계 원로, 중견 인사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29일 “실학을 객관적으로 다루겠다는 생각에 다산의 경세학을 연구하고 있다”며 “경제학 연구자로서 인문학 분야를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조명해 보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과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29일 “실학을 객관적으로 다루겠다는 생각에 다산의 경세학을 연구하고 있다”며 “경제학 연구자로서 인문학 분야를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조명해 보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과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내게 남은 시간이 있다면…, 대학용 한국 경제사 교과서를 쓰고 죽으려고 합니다.”

지난달 29일 경기 과천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80)는 2시간 내내 정력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양손을 펼쳐 제스처를 할 때면 팔순이 아니라 젊은 웅변가 같았다. 1970년대까지 사회주의 계열의 학자로 분류됐던 그는 1980년대 한국 경제가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다는 ‘중진 자본주의론’을 내놓았다. 근래에는 뉴라이트 운동을 대표하는 이론가로 활동했다. ‘시대정신’ 이사장직을 마지막으로 공식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초기 통계는 정확하지 않지만 한국 경제는 1876년 개항 이래 1985년까지 무역 흑자를 본 해가 1924, 1925년 2년에 불과합니다. 끊임없이 외자가 들어와야 하는 구조였던 것이죠. 그래서 수출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안 교수는 요즘에도 매일 6∼8시간씩 논문을 컴퓨터로 확대해 읽으며 연구에 몰두한다고 했다. 그는 구상 중인 경제사 서술의 골간을 설명했다. 강력한 리더십이 있는 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산업화와 재정자립이 가능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냉전 체제에서 저개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할 역량이 없기 때문에 사회주의로 넘어가게 돼 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했던 것이지요.”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주의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지키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기 경제 개발도 당시 형성된 70만 군대의 힘이 바탕이 됐다고 했다. 안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은 자본과 기술, 시장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입 대체 공업화라는 ‘저항적 민족주의의 길’ 대신 현명하게 수출 지향 공업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은 종종 ‘독재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그는 민주화 역시 산업화가 바탕이 됐다는 반론을 펼쳤다. 그는 4·19혁명 당시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던 것도 이승만 대통령이 궁핍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투자한 결과라는 것이다.

“광복 이후 학교 수가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국민들이 자기 소질을 발휘할 수 있는 체제가 되자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아는 학생이 엄청나게 늘어나죠. 이승만은 자기가 양성한 학생들에 의해 물리침을 당한 겁니다.”

안 교수는 요즘 다산 정약용의 경세학에 관한 책 ‘경세유표에 관한 연구’를 집필하고 있다. 민족주의 사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일환이다. 그는 “다산의 학문은 기본적으로 의리지학(義理之學·형이상학적 체계와 도덕적 실천의 원리에 대한 학문)에서 출발한다”며 “실학이 근대적 학문 발전의 증거로 다뤄지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민족주의라는 특정 가치 지향적 연구는 객관적이어야 할 학문의 본령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책은 올 6, 7월경 나올 예정이다.

“한국 정치가 엄청난 지각변동 중입니다. 권위주의 세력을 계승한 새누리당이 오픈 프라이머리(완전참여국민경선제)라는 민주주의 실천 전략을 내놓은 것은 비록 관철된 것은 아니지만 큰 변화입니다. 반면 옛 운동권식의 야당에 국민들이 염증을 내면서 ‘국민의당’이 뜨고 있는데, 정치철학이 부족하지만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정당이므로 세가 더 커질 것으로 봅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6년 전 오른쪽 고관절에서 암이 발견돼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탓이다. 다행히 재발은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죽을 때가 됐다는 것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깨끗해졌습니다. 언제 어떻게 죽든지 섭섭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과천=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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