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역에서 야간열차를 탔습니다. 1982년 겨울 그 밤, 나중에 ‘동물원’ 멤버들이 될 우리 친구들(광석이, 준열이, 경찬이, 그리고 저)은 잔뜩 들떠서 강릉으로 출발했죠. 우린 겨울 바다에게 우리의 희망과 분노를 고백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꼬실 것이었고, 꼬시기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할 계획이었죠.
기차 안에서 우리는 허풍을 안주로 과음을 했고, ‘정기적금’ 기타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가씨들의 반응은 매우 우호적이었죠. 하지만 ‘사고쟁이’ 광석이가 어찌어찌 하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피를 철철 흘리게 되었고, 우린 치료를 위해 새벽 세 시쯤에 어떤 캄캄한 탄광촌에서 기차를 내려야 했습니다.
거리에 아무도 없는 낯선 그곳에서 우린 기어이 보건지소를 찾아냈습니다. 우린 우리의 형제를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남자’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더 큰 시련은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다음 기차는 해가 뜰 때에야 도착했고, 칼바람이 부는 철로 가에서 기차를 기다려야 했던 우리는, 돌아가며 광석이에게 거친 욕설을 한 바가지씩 먹였습니다. 물론 걱정과 사랑의 표현이었죠. 강릉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행 동안 여자들과 마주 앉아보기는커녕 무서운 아저씨들에게 죽을 뻔했고, 심야다방에서 자느라 허리만 뻐근했었으니까요.
마지막 스톱은 오색이었습니다. 며칠 만에 목욕을 한 우리는 행복해졌고 너그러워졌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엔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우린 의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누워서 한계령을 바라봤습니다.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그때 라디오에서 빌리 조엘의 ‘저스트 더 웨이 유 아’가 흘러나왔습니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면 말이죠. 우린 별로 숨기는 것이 없는 아이들과 동물들을 저절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달라고 할 때 문제는 복잡해집니다. 우선, 보여주지 않으면서 알아달라고 하는데,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있는 그대로를 간신히 추적해서 알게 되면 그것이 아니랍니다. 자신의 실체가 아니라, 그의 환상 속 그를 실체로 봐달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대상의 희망적 가상의 상태로 대상을 인정해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대상이 그런 희망적인 상태가 아님을 거듭해서 언행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사랑을 해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죠.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바람을 가질 수 있다면 나를 있는 그대로보다 조금 더 좋은 수준으로 인식해주고, 그렇지 못한 증거들이 확인될 때는 그것들을 무시해달라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겠죠?
우리 친구들은 서로의 있는 그대로의 민낯을 서로에게 노출했었고, 그러했기에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땐 그렇게 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 없었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었던 거의 마지막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각자의 외로움은 결국 각자의 몫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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