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다/너무 가벼워서/깃털보다 가벼워서/답삭 안아 올렸더니/난데없이 눈물 한 방울 투투둑/그걸 보신 우리 엄마/“얘야, 에미야, 우지 마라/그 많던 걱정 근심 다 내려놔서/그렇니라” 하신다/아, 어머니’
화가 윤석남 씨가 이달 초 펴낸 그림책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사계절)의 한 대목이다. 아기처럼 작아진 백발의 엄마를 안고 눈물 흘리는 중년 여성 이야기를 윤 씨가 그림과 글로 담아냈다. 김진 사계절 그림책팀장은 “어른을 위해 만든 그림책”이라며 “40, 50대 여성들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며 공감을 표했다”고 말했다.
또 사계절은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시리즈의 이름을 지난해 ‘디어 그림책’으로 바꿨다. 그림책을 더 이상 어린이만이 아니라 어른도 즐겨 본다는 최신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그림책과 동화책 시장에서 어른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서정적인 그림과 함께 쉬우면서도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이들 책에서 위안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이미지를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도 영향을 미쳤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 고흐의 작품을 차용한 그림책 ‘고흐, 나의 형’도 인기다. 백창화 숲 속 작은 책방 대표는 “한 직장인 여성에게 권했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며 책에 나온 그림을 함께 그리며 마음을 나누는 모임을 운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샬롯의 거미줄’이 최근 100쇄를 돌파했고 ‘내 이름은 삐삐롱 스타킹’도 조만간 100쇄를 넘어설 예정인데, 이는 어른의 힘이 컸다는 분석이다. 박진희 시공주니어 아동청소년팀장은 “아이와 같이 동화책을 보던 엄마들이 책의 매력에 빠져들어 아이가 자란 후에도 계속 동화책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황선미의 ‘목걸이 열쇠’도 80쇄 가까이 찍었다. 2009년 출간된 이수지의 ‘파도야 놀자’는 4만5000권 넘게 팔렸다.
오스트레일리아 일러스트레이터 숀탠의 작품도 어른이 주로 찾는 인기 그림책이다. ‘도착’은 2008년 출간돼 모두 1만8000권이 판매됐고, ‘두 사람’은 1만6000권이 팔렸다.
서울 홍대 앞의 그림책 전문 서점인 ‘베로니카이펙트’ ‘책방피노키오’도 성업 중이다. 유승보 베로니카이펙트 대표는 “미술작품처럼 책을 소장하려는 20, 30대 남녀 고객이 많다”며 “유명 작가의 책은 절판된 후 가격이 계속 오르지만 구해달라는 고객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서는 우리나라가 어른용 그림책 시장이 정착된 미국 일본 영국을 닮아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그림책 보기가 하나의 취미로 정착하면서 시장이 성장할 여지는 충분하다”며 “메시지가 명쾌하면서도 감동이 오래 남는 글을 쓸 수 있는 국내 저자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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