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잊고 살던 고궁을 찾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한껏 맵시를 뽐내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색동옷을 입은 아이들의 흥겨운 윷놀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즐거웠다.
귀여움을 받으려고 알랑거린다는 뜻의 ‘아양 떨다’가 우리의 옷차림에서 나온 말임을 아시는지. ‘아양’은 ‘액엄(額掩)’에서 온 말이다. 방한용 머리쓰개인 액엄이 ‘아얌’으로, 이것이 다시 ‘아양’으로 변한 것이다. ‘아얌을 떨다’ 역시 ‘아양을 떨다’로 바뀐 뒤 굳어졌다. 한복을 격식 있게 차려입을 때 쓰는 ‘아얌드림’의 ‘드림’은 댕기처럼 길게 늘어뜨린 비단이다.
어여쁜 여인이 ‘아얌드림’을 쓰고 사뿐사뿐 걸을 때 떨리는 수술 장식과 비단댕기는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아양 떨다’는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남자가 알랑거리면 ‘아첨’이다.
“오지랖이 넓다”거나 “오지랖 떨지 마”라고 할 때 ‘오지랖’도 한복과 관련이 있다. 오지랖은 원래 ‘웃옷이나 윗도리에 덧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뜻으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주로 쓸데없이 아무 일에나 참견하거나 염치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비꼴 때 쓴다. 겉옷의 앞자락이 시도 때도 없이 펄럭거리는 모습에서 그런 뜻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tvN 코미디빅리그의 ‘오지라퍼’는 오지랖에 사람을 뜻하는 영어 접사 ‘-er’를 붙여 만든 말이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알맞은 우리말을 찾지 못해 신조어를 만들었겠지만 ‘참견쟁이’로 했으면 어땠을까.
‘매무새’와 ‘매무시’도 헷갈리는 이가 많다. 매무새는 옷을 입은 모양새를 말하고, 매무시는 옷 입은 데가 잘못되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니 매무새가 곱지 않으면 매무시를 다시 해야 한다.
‘옷걸이’와 ‘옷거리’도 발음이 같은 까닭에 잘못 쓰는 사람이 많다. 옷걸이는 ‘옷을 걸어두도록 만든 물건’이고 옷거리는 ‘옷을 입은 모양새’다. 즉 옷거리는 ‘옷거리가 좋은 사람은 아무 옷이나 입어도 잘 어울린다’처럼 쓴다.
사냥꾼은 개로 토끼를 잡지만, 아첨꾼은 칭찬으로 우둔한 자를 사냥하고(소크라테스) 최대의 아첨꾼은 곧 그 사람 자신이다(프랜시스 베이컨). 아양 떨고 아첨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에 넘어가는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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