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사로 기억되는 연극 ‘날 보러 와요’의 20주년 공연이 21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1986∼1991년 경기 화성시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 살인사건을 다루는 ‘날 보러 와요’는 스테디셀러의 저력을 보여주는 무대다.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력에 작품을 담는 그릇인 무대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져 ‘웰 메이드’ 연극의 진수를 120분 동안 선보인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이기도 한 이 작품. 비 내리는 밤 라디오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진혼곡)이 흘러나오면 매번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용의자를 잡기 위해 모인 형사 4명과 살인사건을 취재하는 사회부 여기자,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는 용의자 3명이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벌인다.
이 작품은 무대와 연기를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무대는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시각화한 점이 눈길을 끈다. 무대 중앙의 수사본부는 뒤편의 살인사건 현장인 갈대숲과 맞닿아 있다. 바로 뒤에서 사람이 죽어가지만 무기력한 수사팀. 갈대밭이 수사본부를 포위한 듯한 무대 배치는 용의자를 잡지 못한 채 미궁 속에 갇힌 수사팀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배우를 골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권해효 김뢰하 류태호 이대연 등 20년 전 초연 멤버들로 구성된 OB팀과 손종학 김준원 김대종 이원재 등으로 구성된 YB팀이 번갈아 가며 무대에 오른다. OB팀은 초연 때부터 10년간 이 작품을 연출했던 김광림 감독, YB팀은 최근 몇 년간 연출 바통을 이어받았던 변정주 감독이 맡았다.
관록의 OB팀과 패기의 YB팀 연기 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이들 중 하나를 고르라면 OB팀을 추천한다. OB팀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극의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폭력형사 조용구와 빨간 팬티의 용의자 조병순 역으로 각각 출연했던 김뢰하와 류태호가 영화와 같은 배역으로 나온다. 이들의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뛰어나다. 형사 중 이성적인 김 형사 역의 권해효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주도적으로 장면을 이끌어 간다. 김 반장 역의 이대연은 차분한 카리스마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용의자 남 씨 부인 역의 황석정은 5분 남짓 무대에 등장하지만 존재감이 상당하다. 몸뻬를 가슴께까지 추켜올리고 ‘욕 반, 말 반’인 대사를 토해내는 그에게선 산전수전 다 겪은 시골 아낙네의 억센 삶이 물씬 느껴진다.
사회부 여기자인 박 기자 역 이항나의 연기도 좋지만, 실제 기자 입장에서 보면 다소 불편하다. 극에서처럼 기자가 경찰 수사기록을 막무가내로 훔치거나, 데스크가 사실을 왜곡해 소설처럼 쓴 뒤 기자 이름을 달아 기사를 내보내는 경우는 요즘에 거의 없다. 관객은 오해 마시길. ★★★★(별 5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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