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팬을 자처하는 분들 중 상당수는 음악보다 그 분위기 안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듣기보다 배경에 두고자 하는 거죠. 우리 음악은 배경에 켜두기에 결코 좋은 음악이 아닙니다.”
최근 만난 재즈 트럼페터 진킴(본명 김진영·41)은 나무의 혼이 깃든 빳빳한 종이처럼 꼬장꼬장했다. 그가 지난해 낸 데뷔앨범 ‘The Jazz Unit’이 29일 열리는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음반 부문 후보에 올랐다.
평단에서 그를 반긴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1950∼60년대 붐을 일으킨 하드밥(hard bop) 재즈를 국내에서 드물게 추구했다. 둘째, 선율과 즉흥연주의 수준과 순도가 높다. 아트 블레이키 앤드 더 재즈 메신저스, 클리퍼드 브라운(1930∼1956), 행크 모블리(1930∼1986), 소니 롤린스 같은 이들이 증기기관처럼 다퉈 달리던 미국 재즈 황금기가 그의 퀸텟(트럼펫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 드럼) 연주에 인화돼 있다. 8곡 중 7곡은 진킴이 지은 작품. 6분 39초 동안 긴장감을 풀 수 없는 첫 곡 ‘First One’부터 곡들의 진가가 나타난다.
“록의 정수로 많은 이들이 레드 제플린 같은 하드록을 꼽죠. 재즈에서는 하드밥이 그래요. 여러 재즈를 모아 큰 채에 거르면 남는 핵심 같은 것. 바흐(1685∼1750)가 계속 연주되는 것처럼 하드밥도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킴은 예명일 뿐, 그는 ‘토종’이다.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2년 미국 버클리 음대로 재즈 기타를 배우러 갔다가 옛 재즈와 트럼펫의 매력에 빠져 악기를 바꿔 들었다. “어려운 데 매력이 있나 봐요. 색소폰과 달리 트럼펫은 일주일만 손을 떼도 연주 자체가 불가능하거든요.” 그는 20시간 가까이 비행기 타고 이동하던 날 환승 공항 흡연실에서 담배 대신 트럼펫을 꺼내 입을 푼 적도 있다고 했다. “입 주변 근육은 선천적으로 힘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니까요. 트럼펫 연습은 그래서 마치 매일 무거운 걸 끌어올리는 것과 같아요.”
적당히 분위기 맞추는 일 해도 먹고살기 힘든 게 요즘 세상이다. 하드밥 고집쟁이 진킴은 방송작가, 학교강사를 하며 입에 풀칠한다. 연간 20번이 넘는 결혼식 축주도 용돈벌이가 된다. “(수록 곡) ‘Feminine’은 결혼식장에 트럼펫 불러 갔다가 펑펑 우는 신부를 보고 쓴 곡이에요.” 음반 마지막 곡 ‘Yes!’는 그가 꿈에서 들은 멜로디를 녹음해 완성한 곡이다.
“한국 재즈 신이 망가져 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해요. 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돈이 없는 탓일 수도 있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저도 펑크(funk)나 전자음악에 관심 많아요. 하지만 적어도 자기 음악에 재즈란 이름을 붙이려면 거기 합당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스윙, 그리고 블루스….”
그는 가능하면 올가을 2집을 낼 작정이다. 당분간 하드밥에 집중할 것 같다. 정밀한 시대착오는 때로 아름다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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