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 종일 까닭 없이 죽고 싶었다 까닭 없이 세상이 지겨웠고 까닭 없이 오그라들었다
긴 잠을 자고 깬 오늘은 까닭 없이 살고 싶어졌다 아무라도 안아주고 싶은 부드럽게 차오르는 마음
죽겠다고 제초제를 먹고 제 손으로 구급차를 부른 형, 지금은 싱싱한 야채 트럭 몰고 전국을 떠돌고 남편 미워 못 살겠다던 누이는 영국까지 날아가 애 크는 재미로 산다며 가족사진을 보내오고 늙으면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도 고기반찬 없으면 삐지는 할머니
살고자 하는 것들은 대체로 까닭이 없다
사노라면 죽고 싶을 때가 있다. 일신이 막막하고 허망해져, 한 가닥 목숨을 어디 걸어 볼 데가 없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엄습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집안, 내 나라가 적진 같아서 울며 걷는 그런 날이 있는가 하면, 갖가지 근심 걱정이 문득 수그러들고 모든 게 흡족하고 즐겁기만 한 날도 있다. 못마땅하던 사람이나 당최 자길 안 받아 주는 세상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잠잠해지고, 인생이란 살 만한 거구나 싶어지는 방심의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까닭이 없을까? 그럴 리가 없다. 제초제를 마신 사람에게도, 남편이 미운 사람에게도, 쓸쓸한 노년에게도 제각각 죽고 싶기도, 살고 싶기도 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농사는 어느 땐 가망이 없지만, 뜻밖에 장사가 농사에 돌파구를 열어 주기도 한다. 바람을 피운 건지, 돈 사고를 냈는지, 중독자인지 모를 남자는 어느 날 문득 개과천선해서 누이를 기쁘게 한다. 늙는 일이 고되어 푸념하던 할머니도 사실은 언제나, 나물반찬보다 고기반찬이 더 좋고말고.
인생은 파도를 탄다. 다 헤아리기 어려운 계기와 변수들이 숨어 출렁댄다. 그것은 궂은 날 갠 날이 번갈아 찾아들어 요동하고 변화하는 한 편의 드라마다. 살고자 하는 마음에 “까닭이 없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딱히 뭐라 말하기 어려운 생 본능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계산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당위다. 열렬하게 사는 것들은 때로 제가 왜 사는지 따질 겨를이 없다. 삶은 어떻게든 살게 돼 있고 산 것들은 어떻게든 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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