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나눔의 집에 처음 봉사활동을 갔을 때만 해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몰랐어요. 할머니들을 뵙고 얘기를 나누면서 너무나 부끄러웠고, 또 죄책감을 갖게 되더군요.”
조정래 감독(43)에게 24일 개봉하는 영화 ‘귀향’은 14년 동안 그려온 꿈이었다. “봉사활동을 다니던 중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처음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날 밤 그림 속 소녀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꿨고, 일본군 위안부들이 겪은 참상을 알리고 그분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죠.”
그동안 ‘두레소리’(2011년) ‘파울볼’(2014년) 등을 연출한 조 감독.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3년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지만 제작비 조달이 쉽지 않았다. 결국 2014년 다수에게서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총 7만5270명이 참여해 순제작비의 절반이 넘는 12억여 원을 모았다. “처음 펀딩을 할 때는 1000만 원을 모으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하루 만에 3000만 원 이상이 모였죠. 기적 같았어요.”
영화는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첫 일본군 위안부 증언이 나온 직후를 배경으로 위안부 피해자였던 영옥(손숙)이 과거를 회상하며 전개된다. 영옥은 자신과 함께 위안소에 끌려갔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한 친구 정민(강하나)을 떠올리며, 그를 위한 씻김굿을 정민과 같은 나이의 소녀 은경(최리)에게 부탁한다.
영화는 당시 일본군 위안소 풍경, 위안소 운영 방식과 전쟁이 끝난 직후 피해자들이 어떻게 희생됐는지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참고해 대사에 반영하기도 했다. 조 감독은 “배우와 스태프의 희생이 없었다면 영화가 완성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특히 일본인 역할을 맡은 재일교포 배우들은 목숨을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촬영 당시 주인공 정민과 같은 나이인 14세였던 강하나 양 역시 재일교포 4세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하나같이 ‘정말 그렇게 어린 소녀들이 끌려갔었느냐’고 물어요.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의 평균 나이는 16세로, 대부분 초경 전이었다고 하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가가 조직적으로 주도한 폭력입니다.”
14년 만에 꿈을 이뤘지만 조 감독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 특히 일본 관객이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저께 일본 요코하마에서 후원자 시사회를 했는데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정말 많이 우시더군요. 일본에서 꼭 상영돼야 한다는 말도 해주시고요. ‘귀향’이 일종의 문화적 증거물로, 조금이나마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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