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유종]디트로이트를 살려낸 갤러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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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국제부 기자
이유종 국제부 기자
그가 불 꺼진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건물을 사들일 때만 해도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본사가 있는 미국의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 하지만 자동차산업의 쇠퇴로 2013년 미국 도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채를 떠안고 파산을 선언했다. 인구는 줄었고 범죄는 늘었다.

많은 사람이 디트로이트를 떠나던 2013년 뉴욕의 비영리 화랑인 갈라파고스아트스페이스의 로버트 엘름스 대표는 디트로이트로 갔다. 그곳의 폐교 병원 발전소 공장 등 부동산 9개를 사들였다. 모두 합치면 5만5700m² 크기지만 대부분 낡고 방치됐던 흉물스러운 건물들이라 헐값이었다. 면적 1만3000m²짜리 공장은 뉴욕의 작은 아파트 한 채 값보다 싼 50만 달러(약 6억 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50만 달러에 사들인 공장이 지금은 625만 달러(약 76억 원)로 뛰었다. 갈라파고스의 디트로이트 진출 소식이 알려지자 부동산 값부터 뛴 것이다. 삭막했던 디트로이트는 요즘 문화도시로 변신 중이다. 엘름스 대표처럼 문화가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몰려들어 문 닫은 공장과 폐교 건물을 개조해 갤러리, 공연장, 화실로 바꾸었다.

공연과 전시회를 보러 사람들이 모이자 카페 음식점 바도 줄줄이 들어섰고 지역 경제도 서서히 살아났다. 젊은 요리사들이 몰리는 ‘떠오르는 음식 메카’로 디트로이트가 꼽힌다. 문화적인 상업시설은 사람들이 도시에 거주하는 중요한 이유다. 이런 문화 벨트가 형성되면 투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 2009년 16%에 이르던 디트로이트의 실업률은 지난해 5%대로 떨어졌다. 디트로이트 시민은 70% 이상이 집을 소유하고 있어 집값 상승만으로도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부동산 값이 올라 많은 세금을 걷게 된 시는 공공부문 투자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엘름스 대표는 문화 콘텐츠가 지역 경제의 튼튼한 성장 엔진이 될 수 있음을 디트로이트에 앞서 뉴욕 브루클린에서 배웠다. 그는 신진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전시와 공연의 기회를 주기 위해 1995년 1월 브루클린의 버려진 공장지대인 윌리엄스버그에 갈라파고스를 세웠다. 이후 21년 동안 영화 뮤지컬 전시회 등 7500건이 넘는 크고 작은 공연을 진행하며 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들였다. 윌리엄스버그는 갈라파고스처럼 싼 임차료를 보고 몰려든 예술가들 덕분에 지금은 맛집 클럽 스튜디오 갤러리 카페 등이 빼곡한 문화 지대로 바뀌었다.

디트로이트처럼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로 고민하는 국내 지방자치단체들도 문화의 경제적 힘을 믿고 수백억 원을 들여 문화 시설을 짓고 있다. 하지만 낮은 대관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몰리지 않으니 경제적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콘텐츠가 빈약해서이기도 하지만 맥락 없이 생뚱맞게 들어선 건물 탓이 크다. 요즘 쇠락한 도시를 살리는 문화 시설은 대개 수명이 다한 산업유산을 장소와 시간성을 살려 재활용한 것들이다. 갈라파고스는 숱한 성공담의 최신 사례일 뿐이다.

이유종 국제부 기자 pen@donga.com
#디트로이트#로버트 엘름스#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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