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를 찾아서]인공이라곤 온천탕뿐… 산등성이서 오롯한 자연과 만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03시 00분


[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일본 규슈 오이타 현 ‘아마가세 온천마을’

《일본 규슈(九州) 7개 현 전역을 거미줄처럼 잇는 2400여 개 노선의 다양한 버스. 그걸 정해진 기간에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산큐패스(SunQ Pass)의 한국인 구입자가 연간 4만 명을 넘어서며 규슈여행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는 저렴하고 편리한 패스 덕분만이 아니다.

일본어를 몰라도 계획만 잘 세우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도록 상세한 안내와 함께 소소한 질문에까지 답을 해주는 친절한 산큐패스 전용 블로그 ‘규슈타비’(www.kyushutabi.net)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그 정보를 토대로 아직은 산큐패스 여행자가 그리 많이 찾지 않는 ‘물의 고장’ 히타(日田·오이타 현)를 다녀왔다.》
수향 히타의 아늑한 계곡 물가에 자리 잡은 아마가세 온천가. 해질 녘 풍경은 이렇듯 고적하다. 오른편 건물 뒤로는 JR 규다이센 철도가 지나고 료칸 신시요는 거길 오가는 빨간 열차가 조망되는 중턱에 자리 잡았다.
수향 히타의 아늑한 계곡 물가에 자리 잡은 아마가세 온천가. 해질 녘 풍경은 이렇듯 고적하다. 오른편 건물 뒤로는 JR 규다이센 철도가 지나고 료칸 신시요는 거길 오가는 빨간 열차가 조망되는 중턱에 자리 잡았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찾아들며 인적조차 끊긴 구주 계곡의 아마가세(天ヶ瀨) 온천마을. 계곡 양편의 물가 도로엔 료칸과 상점이 줄지어 서있다. 대부분 불조차 켜지 않아 적막감마저 감돈다. 전등불을 켠 몇몇 료칸과 이 조명장식이 없었다면 폐광처럼 을씨년스러웠을지도 모를 이곳. 그 명성과 풍정, 수려한 계곡 경관은 다 어디로 갔지?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1월 한겨울의 주중 저녁만이 이렇듯 한적하다. 주말과 휴가철엔 매우 부산하다.

내겐 이런 고적함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강조하건대 온천여행은 말 그대로 쉬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처럼 조용하고, 때로는 고독감마저 밀려드는 곳일수록 좋다. 그래야 온천수에 맡긴 내 몸과 의식이 깊은 침잠에 빠질 수 있을 터이니.

그런데 료칸 ‘신시요(新紫陽)’는 구주 강 수변도로에 있지 않았다. 가파른 산등성 중턱의 길가에 홀로 떨어져 있었다. 오랜 취재를 통해 터득한 료칸 선별의 안목(眼目)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계곡에선 료칸이 높은 곳에 있을수록 좋다. 전망이 훌륭해서다.

신시요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객실에선 계곡과 산, 숲 그리고 물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게다가 널찍한 테라스에는 로텐부로까지 설치돼 있었다. 그 노천탕에 몸을 담그니 별이 총총한 밤하늘과 계곡등성의 울창한 수풀이 시야에 들어온다. 인공이란 탕 외에는 없다. 열기를 식히느라 차가운 밤공기에 드러낸 내 몸의 모든 땀구멍이 열리며 자연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 료칸의 평가는 오카미(女將·여주인)에 좌우된다. 그날 신시요는 오카미의 메모지 한 장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어설프긴 해도 정성이 깃든 필체의 한글 인사말(사진) 카드 덕분이었다. 카드에는 귀여운 인형이 이부자리에서 잠자는 그림이 있었다.

다카세 준코(高瀨純子). 올해 환갑의 그녀는 놀랍게도 한국말도 했다. “NHK국제방송의 강좌를 듣고 배웠어요.” 그러면서 ‘하나토 온센토 이노리마치(花と溫泉と祈り町·꽃과 온천과 기도의 마을)’라는 료칸의 별명도 설명해줬다.

“6, 7월 여름엔 주변을 덮는 꽃 아지사이(수국)를 감상하며 온천도 즐길 수 있고, 주변엔 기도를 잘 들어주는 지장보살(다카쓰카 아타고 신사)도 있어 이름을 그렇게 붙였답니다.”
료칸 신시요 객실의 로텐부로 테라스.
료칸 신시요 객실의 로텐부로 테라스.

료칸의 정식명칭은 ‘우키하 벳칸(浮羽別館) 신시요’. 계곡에 있는 료칸 우키하의 별관이란 뜻으로 본관은 친정어머니가 운영하고 있다. 별관에는 대욕장 말고도 로텐부로와 대절탕이 각각 두 개씩 더 있다. 모두 계곡 중턱 숲에 자리 잡고 있어 풍치가 그만이다. 가파른 산등성이에 만들어 놓은 운치 만점의 나무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히타(일본 오이타 현)에서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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