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를 찾아서]조용하고 아름다운 ‘작은 교토’… 그곳은 아직도 에도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03시 00분


‘물의 도시’ 히타

수향 히타에 ‘작은 교토’ 라는 별명을 안겨준 마메다마치의 거리 모습. 에도시대 상인들의 거리로 당시의 풍경이 느껴질 정도로 오랜 상점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수향 히타에 ‘작은 교토’ 라는 별명을 안겨준 마메다마치의 거리 모습. 에도시대 상인들의 거리로 당시의 풍경이 느껴질 정도로 오랜 상점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바퀴수레가 다니는 길이 생기고 그것이 몸의 혈관처럼 촘촘한 도로망으로 발전하기 이전. 그때까지 가장 빠르고 경제적이며 효과적인 수송로는 물길이었다. 주요 도시가 큰 강을 따라 발달한 배경이다. 그런데 산악지형에선 더더욱 그랬다. 물 자체가 길이어서다.

일본 규슈 북부의 작은 도시 히타를 소개하기에 앞서 물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다. 지금은 고즈넉한 산중분지지만 에도시대의 히타는 막부의 직할영지로서 상업이 번성했다. 당연히 돈이 넘쳐나고 문화와 예술까지 발달했다. 그 답은 ‘물길’에 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그런데 히타는 온통 산으로 뒤덮인 규슈 북부의 분지. 그래서 내린 비는 죄다 히타로 흘러 개천과 강을 이룬다. 세 개의 작은 구마(畏) 강과 가게쓰(花月) 강이다. 지도를 보자. 히타는 북쪽 가게쓰 강과 작은 세 구마 강이 합쳐진 미쿠마(三畏) 강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다. 도시도 다르지 않다. 크고 작은 물길이 곳곳을 헤집는다. 히타를 떠난 물길은 지쿠고(筑後) 강과 합쳐 서쪽으로 나아가며 시가 평야를 관통해 후쿠오카 지역을 적시고 바다로 흘러든다. 당시에 물은 곧 길이었으니 그 물길을 통해 사람과 정보, 물자와 문화가 히타로 유입됐음은 물론이다.

에도시대(1603∼1867년)까지도 규슈는 그 이름처럼 아홉 개 구니(國·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그 속에 40개 번(藩)이 있었다. 번은 막부의 수장 쇼군(將軍)이 제후에게 맡긴 영지. 번주인 ‘다이묘(大名)’가 막부를 대신해 다스리던 땅이다. 그런데 당시 히타는 지쿠고구니에 속했어도 다이묘의 통치를 받지 않았다. 막부에서 파견한 관리가 직접 관할하는 ‘덴료(天領)’라는 직할영지였다. 그 배경도 역시 ‘물길’이다.

지쿠고 수계의 히타는 강과 연결된 규슈 북부에 있는 여러 구니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상인들로 붐볐고 상업이 번성해 돈과 물자가 풍부했다. 막부가 이곳을 ‘덴료’로 만든 건 그 부(富)를 통제하기 위해서. 막부는 히타에 금융관청을 세우고 파견관리를 통해 고리대금으로 수익을 올렸다. 막부의 곳간을 채우면서 이 지역의 구니가 크는 것을 막기 위한 일거양득의 노림수였다. 구니가 부유해지면 중앙정부(막부)에 대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 규슈가 에도(도쿄)에서 워낙 멀다 보니 이런 방식으로 통제해야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의 영화를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조용하고 아름다운 산중수향(山中水鄕)이다. 다만 ‘덴료’의 전통과 정취만은 아직도 남아 있어 ‘작은 교토’라는 멋진 별명으로 불린다. 그게 많은 여행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마메다마치(豆田町)’. 에도시대 상인거리였던 이곳은 잘 보존된 당시 건물과 상점 덕분에 거리와 골목의 풍정이 예스럽다. 국가중요전통건축물 보존지구로 지정해 보호 중이다.

이 거리에선 그저 하릴없이 걷는 게 곧 즐거움이다. 이곳저곳 기웃대다 보면 고풍스러운 상점과 식당에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중엔 1826년부터 일본술을 만들어 오고 있는 유서 깊은 양조장 ‘군쵸(薰長)’도 있다. 그 안에 들어서면 옛날에 술밥을 쪄내던 초대형 가마솥과 시보리(압착기) 등을 볼 수 있다. 시음장과 자료관까지 두고 양조역사와 양조과정을 전시물로 보여준다. 190년의 양조역사. 그렇다 보니 술맛도 깊다. 그 이름처럼 여운이 긴 향과 맛이 인상적이다.

거리에는 간장과 미소(된장)만 파는 상점도 있다. 이곳도 180년 전 에도시대에 개업한 장유공장의 직영매장. 왕실에 헌상했다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내세우고 있다. 히타는 예로부터 간장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산중이라 잡균의 침입이 적고, 맑고 깨끗한 물과 양조에 적합한 기온 덕분이다. 그래서 히타 여행자 쇼핑리스트에서 간장은 빠지지 않는다. 아직도 곳곳에 오랜 간장공장이 남아있다.

‘작은 교토’ 히타의 풍정을 가장 진하게 풍기는 시기가 바로 요즘이다. 여자 어린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히나마쓰리(3월 3∼31일) 덕분이다. ‘히나’는 일본 전통 복장의 인형. 3월이 되면 집집마다 보관해온 인형을 집안에서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주단을 깔고 전시한다. 한가운데 부부는 일본 왕과 왕비, 주변은 궁녀와 악사들이다. 상점들도 전시를 하는데 특히 마메다마치의 유서 깊은 상점들은 100년을 훨씬 넘긴 화려한 히나 인형을 전시해 여행객의 발길을 잡는다.

물의 도시 히타에선 물의 진수도 맛볼 수 있다. 삿포로맥주와 미쿠마 강상의 식도락이 그것. 삿포로맥주 공장은 본사가 있는 홋카이도 등 전국 여섯 곳에 있다. 히타 공장은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시음을 할 수 있는 전시관까지 갖추고 있어 여행자들에게 인기있다. 삿포로맥주 공장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더 퍼펙트(완벽)’라는 구로라벨(Black Label)과 ‘에비스(Ebisu)’라는 프리미엄 브랜드 맥주시음. 요금은 각각 400엔.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맛이 인상적이다. 막 양조한 신선한 생맥주의 맛을 살려 잔에 따라내는 완벽한 기술 덕분이다.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강상의 식도락을 즐기는 곳은 여러 명이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야타카부네’라는 하우스보트. ‘선상의 가이세키 요리 연회’라 할 정도로 호사스러운 뱃놀이다. 에도시대 때 이곳 상인들의 한여름 피서문화에서 시작된 것으로 5월 하순부터 10월까지 즐길 수 있다. 이때 눈요깃거리로 등장한 게 400년 전통의 우카이다. 밤에 뱃전에 횃불을 밝히고 훈련된 가마우지를 목줄로 조종해 수중의 물고기를 잡는 특별한 낚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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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추천 많은 댓글

  • 2016-02-22 11:38:26

    일본이 부러워 도로변에 차가 없다는거 질서의식 공중도덕 남에게 폐 안끼치기등등 아주좋은 국민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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