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人蔘)은 늘 조선에서 오는데, 조선에 어찌 그리 인삼이 많습니까? 조선에서 오는 홍삼(紅蔘)은 심홍색으로 밝고, 윤이 나는데 산삼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1855년(철종 6년) 12월 초. 베이징에 간 조선 사신단의 종사관 서경순이 만난 중국 문인 주당(周棠)의 질문이다. 주당은 난초화로도 유명했다. 서경순이 답한다.
“예전에는 조선에 산삼이 많았으나 이제는 거의 없고 이름만 남았습니다. 산삼이나 종삼(種蔘)이나 빛깔이 희고 모양도 같습니다. 중국에 오는 인삼도 밭에 심는 것으로 여러 차례 찌고 말리면 빛깔이 저절로 붉고 윤택해집니다. 홍삼의 약효는 백삼(白蔘)보다 못하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백삼을 사용하는데, 중국은 백삼 대신 홍삼을 취하니 그 뜻을 알 수 없습니다.”(‘몽경당일사’ 제3편)
서경순의 대답은 조선시대 인삼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19세기 중반에는 대부분의 인삼이 재배한 것들이었다. 홍삼은 수출용이었고, 국내에서는 여전히 백삼을 사용했다. 산삼은 거의 사라졌다. 이 무렵 개성에서 인삼 재배가 활발했다. 개성은 한양과 중국 국경을 잇는 중간 도시다. 개성에서 재배한 인삼을 홍삼으로 만들어 무역품으로 이용했다. 개성 인삼의 시작이다.
인삼은 고려시대에도 귀하게 여겼다. 송나라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어디나 인삼이 있으나 춘주(春州·춘천지역) 것이 가장 좋다. 생삼(生蔘)과 숙삼(熟蔘) 두 가지가 있는데 생삼은 빛이 희고 무르다. 약에 넣으면 그 맛이 온전하나 여름을 지나면 좀이 먹는다. 보관용으로는 숙삼이 낫다. 모양이 평평한 것은 돌로 눌러 즙을 짜내고 삶기 때문이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찐 삼의 뿌리를 포개서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 인삼의 주요 소비처였으나 인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말린 삼이 납작한 것을 두고 일본인들은 오랫동안 “조선 사람들이 삼의 진액을 다 뽑아먹고 겉껍질만 말렸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서경순이 베이징에 간 19세기 중반에는 이미 자연산 산삼이 귀했다. 대부분이 재배인삼을 쪄서 말린 홍삼이었다. 드물게 만나는 인삼이었으니 중국인들은 산삼 말린 백삼과 재배인삼을 쪄서 말린 홍삼을 구별하기도 힘들었다. 홍삼은 색깔이 붉고 광택이 있으니 더 고급스러웠다.
원래 인삼은 대부분 자연산을 채취한 산삼이었다. 산삼 가공품에는 한 차례 찐 증삼(蒸蔘), 껍질을 벗겨 말린 건삼(乾蔘), 익혀서 색깔이 흰 백삼도 있었다. ‘고려도경’에서는 춘천 일대 삼이 좋다고 했지만 경상도 나삼(羅蔘)을 진품으로 치기도 했고 조선시대에는 두만강, 백두산 일대의 강삼(江蔘)을 최고로 여겼다. 강원도 인제 일대의 기삼(麒蔘)이나 함경도, 평안도 일대의 산악지대에서 나오는 북삼(北蔘)도 유명했다. 모두 산삼이다.
18세기 무렵 인삼 재배와 홍삼이 시작된다. 홍삼은 인삼을 인공 재배하면서 생긴 것이다. 대량생산된 인삼을 전문적인 증포소에서 찐 것이 바로 홍삼이다. 기존의 산삼 가공품과는 다르니 오해도 많았다.
홍삼은 정조 21년(1797년) 6월 25일의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다. 정조가 말한다. “지금 홍삼이라는 ‘가삼(假蔘)’을 조작하여 외국에 파는 일이 잦다. 삼의 빛깔은 누르고 흰데 지금 붉다고 하는 것은 가짜로 만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삼을 조작한 무뢰배가 있을 터인데 궁중에서도 모른 체하고 있다. 장차 외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가삼假蔘’은 ‘가짜 삼’이다. 정조는 “홍삼은 가짜 삼”이라고 화를 냈지만 불과 50년 후 조선 최대의 홍삼무역상 임상옥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재배인삼이 등장하기 전, 인삼(산삼)은 더 귀하고 소중한 약재였다. 인삼 밀매매, 밀무역은 사형으로 다스렸다. 숙종 26년(1700년)에는 왜인들과 인삼을 밀무역했던 동래 상인 김자원을 사형시켰다. 숙종 23년(1697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강계부사 신건의 ‘인삼 뇌물 사건’으로 궁중이 어수선했다. 좌의정 윤지선을 비롯한 상당수의 중신이 뇌물사건에 연루되었다. 탄핵이 줄을 잇고 “평소의 원한으로 지나치게 탄핵한다”는 역탄핵도 등장한다. “저도 뇌물을 받지는 않았지만 ‘5냥의 인삼 선물 제안’을 받았기에 조사를 할 수 없다”는 이조판서 이세백의 ‘양심선언(?)’도 나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