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희뿌연 북구의 겨울향기를 그리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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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3일 화요일 맑음. 미네소타.
#197 Bon Iver ‘Minnesota, WI’(2011년)

본 이베어의 2007년작 ‘For Emma, Forever Ago’ 표지. 겨울의 창문.
본 이베어의 2007년작 ‘For Emma, Forever Ago’ 표지. 겨울의 창문.
‘…하우 두 유 시 더 월드?

얼마 전 만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케빈 컨에게 결례를 무릅쓰고 용기 내 물었다. 안경을 쓴 그의 시력이 어느 정도인가 궁금해서다. “아웃 오브 포커스. 대츠 더 월드 아이 시. 벗 굿 이너프(초점이 나간 사진 같아요. 나한테 세상은 그렇게 보여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요).”

그가 사는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외곽의 숲 지대가 궁금해졌다. 그의 아내 패멀라는 “사슴, 여우, 매, 칠면조, 코요테가 뛰노는 동물의 천국이자 겨울과 눈의 나라”라고 했다. 케빈이 매일 보는 희미한 초록의 진경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미국에 대해 쥐뿔도 모르지만 오늘 뜬금없이 위스콘신 주, 미네소타 주 같은 데에 가보고 싶어진 건 엊그제 첫 내한공연을 한 밴드 본 이베어 때문이기도 하다. 8인조로 무대에 선 그들의 공연은 2대의 드럼이 만들어낸 섬세하거나 힘찬 리듬, 여성 코러스 3명의 화음까지 보태 인상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귀로 듣고 싶다면 본 이베어의 데뷔작 ‘For Emma, Forever Ago’(2007년)를 틀면 된다. 음악생활에 환멸을 느끼던 차에 실연까지 당한 리더 저스틴 버넌은 2006년 11월, 고향 위스콘신 주 오클레어에서 차로 한 시간 떨어진 아버지의 외딴 사냥용 오두막으로 떠난다. 그는 그간 만든 음악이 저장된 노트북부터 눈 속에 묻어버린다. 식량은 직접 사냥해 해결하며 멜로디를 짜깁고 악기를 연주했다. 3개월 동안 오두막에서 고군분투한 결과물, ‘For Emma…’는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인디 포크의 걸작 반열에 오른다. 1집보다 좋은 2집 ‘Bon Iver’는 폐업한 동물병원을 개조한 스튜디오에서 만들었다.

본 이베어 2집은 노르웨이와 덴마크 차트에선 1위를 차지했다. 그러게. 본 이베어의 음악에선 북유럽 향기나 겨울 냄새 같은 게 난다. 가성으로 속살대는 보컬과 섬세한 관현악, 밴드 편곡…. ‘좋은 겨울(Bon hiver)’이란 프랑스어를 비튼 팀명은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따온 거다.

어제, 아는 동생이 아이슬란드와 그곳 음악에 관해 다룬 책을 곧 낸다며 날 찾아왔다. 겨울이 끝나는 게 왠지 아쉽다. 떠나고 싶다. 회색 하늘에 포위된 멀건 해가 겨우 제 빛을 내는 풍경을 향해. 흰 눈에 파묻힌 오두막으로. 쨍한 것들로 가득한 봄, 여름에서 멀리멀리.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본 이베어#월든#미네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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