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의 ‘시선의 문학사’(문학과지성사)는 그간 기술된 한국문학사에 대한 도전이다.
그는 한국문학사의 이론적 거점으로 꼽혀온 임화의 ‘신문학사’와 김윤식·김현의 ‘한국문학사’를 두고, ‘근대성’에 대한 강박적 이해에 집중한 나머지 문학사의 개별적인 사건들을 끌어안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신문학사’와 ‘한국문학사’가 ‘근대성’이라는 개념 아래 문학 텍스트들을 종속시켰고, 텍스트가 저마다 갖고 있는 특성들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시선의 문학사’에서 한국문학사를 아우르는 하나의 이념을 택하는 대신에 문학 텍스트들의 다양한 역동성을 부각시키는 데 집중한다. 가령 장편 ‘무정’의 경우 그동안 작가 이광수의 계몽주의적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소설로 읽혔었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 작품의 인물 묘사에 대한 뛰어난 감각은 작품의 미학성을 두드러지게 한다. 이때 ‘무정’은 계몽적인 틀로 묶이는 게 아니라 현대소설의 미학을 갖춘 작품으로 평가된다.
저자는 이런 방식을 통해 염상섭의 소설에서 경계인의 시선이 두드러진다는 것, 김소월의 시가 토착적 미학을 함유한다는 것, 정지용과 백석의 시편은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 등을 짚는다. 저자의 분석을 거치면서 한국문학 작품들은 거대한 동일성으로 묶이는 게 아닌, 저마다 차이를 가진 생명력 있는 텍스트가 된다. 저자는 “하나의 문학 텍스트의 문학사적 가치는 한 사람의 작가의 동일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으며,(…) 그것이 드러내는 문학적인 것의 특이성과 변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며 자신의 작업의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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