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거기가 어딘지 온 몸으로 가르키고 있는 국보 20호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먼 발치부터 더듬더듬 몇백 년 발치부터 더듬더듬 정강이 살이 헐어, 헐어도 닿지 못하고 언제나 묵언수행으로 서서 너 혼자 깨달으라고 마음의 뒤축을 높이며 거꾸러지기도 하는 그 순간에도 그 발길 앞에 손을 뻗으며 애오라지 서울에서 경주까지 뻗으며 뻗으며 서울에서 경주까지 다 내 팔이 되어 불손한 마음들을 쓱쓱 잘라내며 다시 뻗지만 아직도 다 읽어 내지 못하는 무지의 이 독법을 툭툭 털어내며 이제는 보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터벅터벅 그 서늘한 위엄 앞으로 다가가는데……
둥실 맷방석만 한 달이 동산 위에 떠오르는 정월대보름은 이 나라 깊은 산 큰절 문 없는 집(無門關·무문관)에서 아흔 날 동안 면벽참선을 해온 선승들의 동안거(冬安居) 해제일이었다. 무슨 화두(話頭)를 깨치신 말씀을 듣고자 하면 저 경주 토함산 불국사 앞뜰로 가야 한다. 거기 석가탑과 다보탑이 펴는 영산정토(靈山淨土)의 설법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작아져서 구멍가게에서나 쓰이는 십 원짜리 동전에 새겨 있는 ‘불국사 다보탑’은 그 동전 몇만 섬을 쌓아놓아도 값을 치를 수 없는 우리의 국보 20호이며 인류의 홍복을 새해에 고루 베푸는 다보불(多寶佛)이다. 백제 석조예술의 명장 아사달이 법화경 가르침을 조형물로 구현한 것이다. 이 탑은 여느 탑들과는 사뭇 다르게 십(十)자 모양의 기단에 네 군데 돌계단을 두르고 8각의 탑신에 난간을 둘렀으며 상륜은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 보륜(寶輪) 보주(寶珠) 등으로 장식했다. 경전에 따랐다고는 하나 그 독창성과 예술성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의 어떤 탑도 견줄 수가 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위엄을 떨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완성된 이 탑은 1925년 무렵 왜인들이 탑을 해체할 때 내장된 사리와 사리장치며 유물들이 유실됐으며 돌계단 위에 서있던 네 마리의 사자 가운데 세 마리도 약탈해 간 뒤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시인은 무량한 깨달음의 말씀을 듣고자 오늘도 ‘서울에서 경주까지 다 내 팔이 되어/불손한 마음들을 쓱쓱 잘라내며 다시 뻗고’ 있다. 누군들 거기 닿을 수 있으랴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