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와 3·1운동]3·1운동 당시 천도교인 300만명 육박… 민족 대표하는 종교로 나라에 힘 보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5일 03시 00분


박남수 교령 인터뷰

《“이곳 천도교중앙총부 앞에서 삼일로가 시작됩니다. 그만큼 3·1운동과 천도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최근 서울 종로구 삼일로 천도교중앙총부에서 만난 천도교 박남수 교령(73)은 천도교와 3·1운동의 밀접한 관계를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1919년 3·1운동이 발화되고 전 국민의 운동으로 승화한 데는 천도교의 공헌이 컸다. 1860년 수운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은 1905년 3대 교조 의암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3·1운동 당시의 천도교의 공헌을 설명한다면…

“현재 중앙총부 바로 옆에 있는 천도교중앙대교당은 사실 3·1운동을 위해 만든 것이다. 당시 교인들의 성금을 받아 건설했는데, 사실은 교당 건립 자금 모금 명목으로 3·1운동 자금을 모았다. 당시 100만 원이 모였는데, 부잣집 100여 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당시 천도교인은 전국적으로 300만 명에 이르렀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민족을 대표하는 종교였다.”

―교당에 기둥이 없는 점 등 구조가 특이하다.

“맞다. 사실 종교 집회가 아니라 대중 집회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건물이다. 이게 모두 3·1운동을 생각한 설계였다. 근대사를 봐도 수많은 정당들이 이곳에서 창당대회를 열었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공간이다.”

―역사 문화 관광지로도 활용 가치가 있다.

“서울시와 교당을 포함해 인근 조계사, 창경궁, 인사동 일대를 역사문화 순례 코스로 지정하는 것을 협의하고 있다. 조계사 내에 회화나무가 있는 곳은 보성사(普成社) 터다. 1919년 당시 천도교 소속 인쇄소였던 이곳에서 독립선언서가 인쇄됐다.”

―오늘날 3·1운동의 정신은 어떤 의미가 있나.

“제헌 헌법 전문에도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요즘 이에 대해 너무 모른다. 3·1운동의 3대 정신은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이다. 이 정신은 훗날 유엔이 창설되며 유엔 헌장의 기본 정신이 될 만큼 위대한 것이다. 독립선언서를 보면 ‘그때 이분들(민족대표들)이 어떻게 이런 글을 썼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하다. 이런 찬란한 정신문명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최근 천도교에서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교단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어린아이도 한울님이니 때리지 말라’고 하셨다. 천도교는 ‘어린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국민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아이들은 우주의 생명체가 이어가는 원칙이고 생명의 상징이다. 모든 만물이 생명이다. 내 몸이 당신의 몸이고, 당신의 몸이 내 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아이를 때리지 않을 수 있다. 또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과 마음이 일치돼야 아동학대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교령께서는 종교 간 화합을 강조해왔다.

“최근 들어 종교 간 화합의 움직임이 더 좋아진 것 같다. 종교지도자협의회 등에서 각 종교 수장들이 얼굴을 붉히지 않는 것이 덕목이 됐다. 저는 항상 다른 것,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큰 조직이 화합에 앞장서야 한다. 천도교가 지금은 교세가 작아졌지만 3·1운동 당시에는 굉장했다. 우리 민족은 다(多)종교를 인정했던 민족이다. 그래서 외래 종교가 들어와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 전통을 살려야 한다.”

―천도교가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경전보다는 실천하는 교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천도교에서 민족을 구할 수 있고, 사람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일거리가 있으면 사람이 모인다.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만들기, 일거리가 있는 조직 만들기에 힘쓰겠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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