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케스트라 지휘…. 혹시 배워볼 수 있을까요?” “네?” 황당한 요청이다. 오케스트라 지휘는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배워야 하는 일이다. 화성악 등 이론도 익혀야 한다. 악보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기자가 도전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지휘를 하는지 궁금했다. 직접 지휘대에 서면 어떤 느낌일지도. 이 요청을 심포니송의 함신익 지휘자가 흔쾌히 수락했다. 함 지휘자는 “며칠 만에 지휘를 할 수는 없지만 체험은 가능하다.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무모한 도전은 지난달부터 2주간 총 4차례 3시간씩 진행됐다. 귀가하면 거의 매일 2, 3시간씩 개인연습도 이어졌다. 》
○ 첫날-손 따로 마음 따로
도전곡은 김규환 작곡, 박문호 작사의 가곡 ‘님이 오시는지’였다. 불과 7쪽에 불과한 악보였지만 난해한 암호 같았다. 지휘자의 악보인 총보에는 각 악기의 악보와 노랫말 등이 전부 담겨 있다. 악기 종류는 10개.
“그럼 연주자 10명과 성악가 앞에 서면 되는 거죠?” 함 지휘자는 미소를 지었다. “아뇨, 60명 정도 됩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우선 악보 보는 법부터 배웠다. 함 지휘자는 “지휘자는 악보 분석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했다. 악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기자는 악보의 흐름과 악기 구성을 무작정 외울 수밖에 없었다.
첫날은 지휘봉을 잡지 못한 채 자세부터 교정받았다. “키가 2m가 되는 것처럼 자신감을 갖고 지휘대에 서야 한다”는 것이 조언이었다. 오른손을 4분의 4박자에 맞춰 움직였다. 피아노 반주에 박자를 맞추는 것도 힘들었다. “악보 보고 400번 연습한 다음에 오세요.” 보다 못한 함 지휘자의 주문이었다.
○ 둘째 날-총체적 난국
“템포도 안 맞고, 음악을 마냥 기다리고 있어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오른손을 움직이자마자 함 지휘자는 곧 중지시켰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가야지,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함 지휘자에 따르면 지휘자는 음악을 이해하고, 연주에 영감도 줘야 하는 존재다.
템포, 박자, 시선, 손의 움직임 등을 모두 생각하면서 음악까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틀리고, 틀리고 또 틀렸다.
○ 셋째 날-몰려오는 후회
틈만 나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휘에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는 냉정한 촌평이 나왔다. 템포도 맞고, 손의 움직임도 괜찮아졌지만 곡에 대한 해석이 없고, 손에 지휘자만의 감정이 실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지휘자는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곳, 어떤 악기를 살리고 싶은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 무섭게 귓가에 꽂혔다. 지휘봉을 잡지 않은 왼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정말 진땀이 났다. “괜히 지휘한다고 말한 것 같습니다. 후회가 됩니다.” 그러자 함 지휘자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좀 지휘를 아는 것 같네요.”
○ 디데이-땀으로 목욕
2일 서울 강남구의 심포니송 연습실로 향하면서 자꾸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다. 60여 명이 모인 오케스트라를 보자 숨이 턱 막혔다.
단원들은 박수로 기자를 맞았지만 지휘대로 향하는 발걸음은 ‘단두대’로 향하는 발걸음처럼 느껴졌다. 지휘대에 서자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연습한 것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단 시작은 했으나 지휘봉 끝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냥 죄송하다고, 몰래카메라였다고 말하고 나갈까’, 이런 생각도 스쳤다.
4분여가 흐르고 음악이 멈췄다. 드디어 끝났다. 하지만 함 지휘자는 말했다. “이제 첫 연습을 했으니 단원들에게 요구할 점을 말해 주세요.” 난감했다. “클라이맥스에서 좀 더 빠르게…”라고 둘러댄 뒤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이번에는 조금 나은 것 같았다. 20여 분간 리허설 등을 갖고 지휘대에서 내려왔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부족한 지휘를 잘 따라준 단원들에게 무엇보다 미안하고 고맙다.
PS: 다시 한번 하라고? 절대 안 한다. 직장인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를 하며 음악과 멀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악기 하나를 연주하는 것과 지휘는 차원이 달랐다. 오목과 입신(入神)으로 불리는 바둑 9단의 세계. 그 차이라고나 할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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