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기자의 談담]쓱 한 번으로 시선을 붙잡다… “광고에 사람의 온도를 넣고 싶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7일 03시 00분


‘쓱’ 광고 히트 백종열 617프로덕션 감독

서울 강남구 논현동 ‘617’ 광고 프로덕션에서 만난 백종열 감독이 검은색 색연필로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행복 기원 메시지를 손글씨로 썼다(위 사진). 그는 SSG닷컴의 ‘쓱 광고’(아래 왼쪽 사진)와 영화 ‘뷰티 인사이드’(아래 오른쪽사진)를 만들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신세계 제공
서울 강남구 논현동 ‘617’ 광고 프로덕션에서 만난 백종열 감독이 검은색 색연필로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행복 기원 메시지를 손글씨로 썼다(위 사진). 그는 SSG닷컴의 ‘쓱 광고’(아래 왼쪽 사진)와 영화 ‘뷰티 인사이드’(아래 오른쪽사진)를 만들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신세계 제공
《 공효진: “영어 좀 하죠? (‘SSG’라고 쓰여 있는 화면을 가리키며) 이거 읽어봐요.”

공유: (힐끗 쳐다보고) “쓱.”

공효진: (무표정하게) “잘하네.”

히트 광고가 나왔다. 지난해 12월부터 방송된 후 지금까지 유튜브 동영상 조회 건수가 250만 건. 신세계그룹의 통합 온라인몰인 SSG닷컴의 일명 ‘쓱 광고’ 시리즈다. 남녀 모델은 ‘SSG’를 ‘ㅅㅅㄱ’이라 쓰고 ‘쓱’이라고 불렀다. MLB(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므르브’라고 부르는 요즘 젊은이들의 화법을 반영한 것이다. ‘에스에스지’에서 ‘쓱’으로 발음을 바꾼 건 소비자 인지도를 높인 신의 한 수였다. 신세계 측은 “SSG닷컴의 1, 2월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32% 오른 데엔 ‘쓱 광고’ 인기의 영향이 컸다”라고 귀띔했다. 광고의 색(色)도 다르다. 모던하다. 광고제작 프로덕션인 ‘617’의 백종열 감독(46)은 ‘그림처럼 보이는 광고’를 만들어냈다. 그는 유명 CF감독이자 영화감독, 캘리그래퍼(글씨 예술가), 안경과 문구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21세기형 멀티아티스트인 그를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617’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감각을 ‘쓱’ 하고 싶어서…. 》


김선미 기자
김선미 기자
생각은 만질 수 있는 것

그의 공간은 철제 책꽂이가 사방에 놓여 있는 오픈형 복층 구조였다. 아래층 테이블 위에는 국내 신문들과 함께 미국 디자인잡지 ‘월페이퍼’가 놓여 있었다. 위층엔 백 씨가 지난해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받은 영화 ‘뷰티 인사이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뷰티 인사이드는 매일 아침 외모가 바뀌는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영화다. 도시바와 인텔이 동명(同名)의 제목으로 만들었던 6부작 웹 드라마 시리즈를 원작으로 했다.

―영화는 원작에 비해 광고의 느낌이 강했다. 남자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 욕실 수납장 문을 열 때 ‘나스’와 ‘이솝’ 화장품이 눈에 띄었다. 감독의 취향인 듯했다.

“맞다. 나스는 제품 패키지의 영문 서체가 감각적이라서, 이솝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마음에 들어 골랐다.”

―가구 디자이너인 남자 주인공이 여자에게 준 반지도 인상적이었다. 나무 반지 가운데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디자인….

“남자는 나무로 특화된 캐릭터였기 때문에 프러포즈 반지도 자작나무로 만들었다. 그 반지는 여주인공이었던 한효주 씨에게 선물로 줬다. 효주 씨 손가락에 맞춘 반지니까.”

백종열 감독의 사무실에서 찾은 ‘그의 취향‘
백종열 감독의 사무실에서 찾은 ‘그의 취향‘

―감독이 여주인공에게 사심(私心)이 있나 싶을 정도로 한효주 씨가 예쁘게 나왔다.

“효주 씨를 캐스팅한 가장 큰 이유는 대립 각을 쉽게 세우지 않는 선한 눈빛 때문이었다. 그런데 효주 씨는 너무 착하게 생겼다. ―영화든 광고든 모든 장면을 철저하게 계산하는 것 같다.

“후회하는 걸 싫어한다.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생각나는 게 있으면 그 생각을 만질 수 있게끔 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얼렁뚱땅” 영상의 세계에 입문했다.

“서울 중경고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에 가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넉넉지 않은 집에서 굉장히 이상한 허세를 부린 거라서 결국엔 버텨내지 못하고 2년 만에 돌아왔다.”

―어느 블로그에서 백 감독이 뉴욕주립대 산하 디자인학교(FIT)를 나왔다던데….

“아니다.”

―결국 대학은 졸업하지 못한 건가.

“그렇다. ‘일단 살아야 하는데’라고 고민할 때 친구가 사진가 김용호 선생님의 스튜디오인 ‘도프앤컴퍼니’에 면접을 간대서 동행했다가 그곳에서 막내로 일하게 됐다. 1990년대 중반 엘칸토, 무크 등 패션브랜드 광고 사진을 찍었다. 이후 독립해 서울 용산의 할머니 집 거실에 테이블, PC만 놓고 만든 닉스, 스톰 등의 패션광고가 히트했다. 영상광고는 2000년에 ‘에뛰드’ 화장품 측에서 지면 광고 느낌으로 TV 광고도 만들 수 있겠냐고 해서 얼렁뚱땅 ‘하겠다’고 답하며 입문했다. 그래서 이제까지 조감독 생활을 단 한 시간도 한 적이 없다.”

―지면 광고와 영상 광고는 많이 다를 텐데….

“초반에 집중해 공부한 시간이 길었다. 장비는 뭔지, 업계 용어는 뭔지 몸으로 부딪치며 배웠다.”

―어떻게….

“아르바이트 막내, 나이 많은 스태프…. 가리지 않고 보이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었다.”

―그간 히트작들은….

“광고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박웅현 TBWA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와 일을 많이 했다. SK텔레콤의 ‘현대생활백서’, 네이버 ‘세상의 모든 지식’ 등등.”



호퍼의 우울함, 쇼핑을 만나다


―쓱 광고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매우 만족해했다고 한다.

“광고대행사 HS애드가 미국 작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그림을 활용하기로 하는 등 아이디어 세팅을 끝내놓은 상태였다. 광고제작 프로덕션인 우리는 그 후에 투입됐다.”

백종열 감독의 사무실에서 찾은 ‘그의 취향‘
백종열 감독의 사무실에서 찾은 ‘그의 취향‘

―그렇다면 ‘백종열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어떻게 화면을 구성할 것인가’였다. 호퍼의 어떤 그림을 쓸지,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배치할지. 호퍼 그림은 우울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쇼핑과 어울리지 않는다. 명도, 채도 올리며 색감들을 리터치하면서도 호퍼 고유의 색채 톤을 유지하는 게 과제였다.”

색감이 뛰어난 그는 검은색 차와 자전거를 타고 투명한 뿔테 안경을 낀다. 색끼리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다. 사무실 건물 밖에는 그의 ‘갤로퍼’가 주차돼 있었다. 외관은 검은색 무광(無光)인데 내부 계기판 주변 대시보드와 시트, 바닥은 나무 소재로 싹 개조한 차였다. 사무실 안에 들여놓은 미국산 ‘캐논데일’ 자전거도 검은색 무광 프레임이었다.

―기혼자의 무거운 짐이 느껴지지 않는다.

“(웃음) 싱글이다.”

―지금 입고 있는 검은색 점퍼에는 ‘구조대원들(SAPEURS POMPIERS)’이라는 빨간색 프랑스어 라벨이 붙어 있다. 처음 보는 브랜드인데….

“상표가 아니다. 일본 도쿄의 한 가게에서 이런 라벨들을 판다. 마음에 드는 걸 사다가 옷에 달아 입는다.”

―왜 회사 이름이 ‘617’인가.

“기념할 날짜. 기념 이유를 공개할 수는 없고….”

―돈을 많이 벌었겠다. 성공한 것인가.

“오래 살아남았다는 게 답변이 될 수 있겠다. 워낙 생겼다가 사라진 프로덕션이 많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많다.”

―617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공책도, 속옷도 만들어 판다.

“명절 때 지인들에게 사과 같은 뻔한 선물을 보내기보다 내가 만든 공책을 선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필요가 발명을 만드는 것 같다. 사진가 홍장현 씨와 ‘그래픽 플라스틱’이란 안경 브랜드를 만든 것도 그런 맥락인가. 요즘 연예인들이 많이 썼던데….

“각국 도시들을 다녀 봐도 마음에 쏙 드는 안경을 만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내 얼굴에 맞는 안경을 직접 만들게 됐다. 안경은 묘한 장르다. 의학, 광학적인 기능을 하면서도 사람들의 관심이 얼굴 위에서 집중되는 ‘또 다른 옷’이다.”

그의 책상 위에는 온갖 종류의 필기도구들이 있다. 그는 유명 캘리그래퍼이기도 하다. SK텔레콤의 ‘생각대로 해, 그게 답이야’, 더페이스샵의 ‘내 어깨에서 영화보기/길에서 안아주거나 기대서 잠이 들거나/내 뒤에서 날 감싸거나’ 등의 광고 필체가 그의 손글씨였다. 폰트 회사인 산돌커뮤니케이션은 ‘백종열체’도 선보이고 있다.

백종열 감독
백종열 감독

세밀한 연출력에 카리스마까지

―아날로그 성향이 강한 것 같다. 그런데 정보통신기술(ICT)로 광고 환경도 많이 바뀌지 않았나.

“이젠 모바일 시장이다. 고객들의 검색의 흐름을 찾아 광고를 내보내기 때문에 침투력과 파괴력이 엄청나다. 나도 광고하는 사람이지만 광고에 낚이고 설득당한다. 광고는 더 세분된 고객을 타깃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소통에 대한 정의는….

“쓱 광고에도, 영화에도 넣고 싶었던 건 사람의 온도다. 아무리 디지털화해도 체온은 배제될 수 없으니까. 쓱 광고에도 화면의 일정 부분은 포커스를 일부러 날렸다. 1억 화소 카메라가 곧 나온다는데, 너무 다 잘 보이는 기술이 굳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의도적으로 포커스를 살짝 죽이면 푸근해진다. 거기에 사람의 온도, 소통이 있다.”

―지금, 행복한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행복하다, 만족스럽고. 어떤 것들은 더 해야지 싶지만 그 자체를 바라보고 끌고 가고 즐기는 그런 관점이 필요한 것 같다.”

동아일보 독자들을 위한 캘리그래피를 부탁해봤다. 그는 종이로 심을 까는 소박한 검정 색연필을 꺼내 들고 백지에 예의 그 힘찬 필체로 썼다. ‘행복뿐입니다. 행복하세요.’

그와 쓱 광고 작업을 했던 HS애드 주은숙 부장에게 나중에 물어봤다. 함께 일해 본 백 감독은 어땠는지.

“백 감독은 경기 양평에 5개의 세트장을 온통 하얗게 제작한 뒤 촬영 후반부에 색을 따로 입혔는데, 하얀 세트장마저 감각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디렉션(지시)이 정확했다. 남녀 모델이 눈을 마주치는 장면까지 디테일하게 연출했다. 그림 같은 광고를 원하는 광고주의 세련된 요구에 맞추려면 감독의 예술 감각이 1순위로 필요했다. 현장에서 유명 모델들을 장악할 수 있는 카리스마도 있어야 했다. 그게 백 감독이었다.”

그는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기성 시장과 제도에 반하는 모습을 트위터에서 드러내기도 한다. 예술적 스펙트럼만큼 캐릭터가 다면적이었다. 참, 그의 한쪽 귀에는 1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커다란 구멍이 쓱 뚫려 있었다. 그 구멍이 너무 커서 놀라웠다.

― 안 아픈가.

“안 아프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백종열#쓱#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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