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의 새로움이 낡아 또 다른 새로움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8일 03시 00분


서울대미술관 ‘뉴 올드’전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폴커 알부스의 ‘픽셀-페르시아 양탄자’, 프랑크 빌렘스의 스펀지 쿠션 의자인 ‘플뤼 드 마담 루벤스’, 질비아 크뉘펠의 ‘주거수칙 시리즈: 게으름뱅이 옷장’, 안락의자를 은색 테이프로 감아 만든 요한 올린의 ‘지저스 퍼니처’. 구식 생활용품과 가구의 현실적 재생 방법을 위트 있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폴커 알부스의 ‘픽셀-페르시아 양탄자’, 프랑크 빌렘스의 스펀지 쿠션 의자인 ‘플뤼 드 마담 루벤스’, 질비아 크뉘펠의 ‘주거수칙 시리즈: 게으름뱅이 옷장’, 안락의자를 은색 테이프로 감아 만든 요한 올린의 ‘지저스 퍼니처’. 구식 생활용품과 가구의 현실적 재생 방법을 위트 있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서울대미술관의 핸디캡은 입지다. 서울대 학생이나 인근 거주민이 아니라면 오로지 미술 전시를 관람할 목적으로 찾아가 보라고 선뜻 권하기는 망설여진다. 4월 17일까지 열리는 ‘뉴 올드: 전통과 새로움 사이의 디자인’전은 제목만 얼핏 봐서는 흔해빠진 디자인 작품 모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명료한 주제에 걸맞은 탄탄한 문맥의 콘텐츠를 갖췄다. 새로움의 폐기 주기가 갈수록 단축되는 시대에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관람객이라면, 번거로운 서울대 나들이를 한 번쯤 고려해볼 만하다.

독일국제교류처(ifa)가 기획한 이 디자인전 프로그램은 2011년 5월 이스라엘 홀론디자인뮤지엄 전시를 시작으로 세계를 순회하고 있다. 주제와 어울리는 작업을 해온 현지 작가를 섭외해 참여시킨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 작가 7팀과 유럽 및 미국 작가를 포함해 52팀이 제작한 가구, 생활용품, 도자기, 영상 등 8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주세균의 ‘트레이싱 드로잉 시리즈’. 밋밋하게 구워낸 도기 위에 고려청자 문양 이미지를 연필로 세밀하게 그려 넣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주세균의 ‘트레이싱 드로잉 시리즈’. 밋밋하게 구워낸 도기 위에 고려청자 문양 이미지를 연필로 세밀하게 그려 넣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일관된 주제는 ‘사물의 새로움과 오래됨에 대해 살펴 그 차이와 새로운 결합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 주민선 학예연구사는 “낡음이 되어버린 한때의 새로움을 현재의 또 다른 새로움으로 전이시키는 작업은 ‘새로운 폐기물’이 빠르게 쌓여가는 고도산업사회에 순환의 숨통을 열어준다”고 말했다.

질비아 크뉘펠의 ‘주거수칙 시리즈: 게으름뱅이 옷장’은 결코 재현될 수 없는 바로크 시대의 양식 유물에 대한 오랜 집착을 유희적으로 해체시켜 내놓은 대안이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육중한 목재 양문옷장. 다가가서 확인한 주재료는 검은색 스펀지다. 스펀지 블록 여러 개를 묶어 만든 ‘옷장 모양 조각’ 틈새에 이런저런 물품을 꽂아 쓸 수 있도록 했다. 쌓이는 먼지만 해결할 수 있다면 “장 깊숙이 넣어놓은 물건보다 찾아 쓰기 쉽다”는 디자이너의 설명은 분명 유효하다.

소은명 작가의 ‘더 라인스’는 크뉘펠보다 한층 정돈된 방식으로 전통 양식을 재해석했다. 그의 수납장은 나무 프레임에 무채색 고무 밴드를 입혀 만들었다. 수납장 전면부에 문짝 대신 수직으로 교차시켜 고정한 고무 밴드는 한옥 문창살 패턴의 소박한 미감을 경쾌하게 수용한 장치다. 밴드 틈새를 벌리는 동작 하나로 ‘문고리를 잡아 열고 닫는’ 과정을 대체했다. 단순한 조합이지만 편의성과 외양 모두에서 장점이 돋보인다.

양웅걸 작가는 전통 목재 소반에 가죽과 도기 등 새로운 소재를 끌어들여 합성했다. 소반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흩뜨리지 않으면서 새 재료의 특성을 살려 용도와 규격을 다변화했다. 옛 좌식 문화가 낳은 유물을 현대적 입식 생활방식에 재생시킬 방법을 제안한 것. 주세균 작가의 ‘트레이싱 드로잉 시리즈’는 도기 위에 옛 청자의 이미지를 연필로 정교하게 그려 넣음으로써 전통의 현대적 의미를 직설적으로 캐묻는다. ‘정직’ ‘노력’ 등 사회에서 옳다고 여기는 단어를 추린 뒤 그 형태를 회전시켜 그릇을 주조한 ‘텍스트 병 시리즈’는 디자이너의 고민을 물질의 영역 너머로 확장한 시도로 읽힌다. 2000∼3000원. 02-880-9504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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