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혔다는 것만으로 ‘거장의 신화’가 될 수 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8일 03시 00분


국현 ‘근대 거장 시리즈-변월룡’展

변월룡 작가가 소련 정부의 지령으로 북한 평양미술대 학장으로 재직한 시기인 1953년에 그린 유채화 ‘판문점에서의 북한 포로 송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변월룡 작가가 소련 정부의 지령으로 북한 평양미술대 학장으로 재직한 시기인 1953년에 그린 유채화 ‘판문점에서의 북한 포로 송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주 ‘백 년의 신화: 한국근대미술 거장전’ 시리즈의 첫 번째 전시로 ‘변월룡(1916∼1990)’전을 덕수궁관에서 개막했다. 국현은 뒤이어 같은 타이틀로 이중섭, 유영국전을 열 예정이다. 세 작가의 공통점은 올해가 태어난 지 100년째라는 것. 그러나 5월 8일까지 열리는 시리즈 첫 전시가 안겨주는 것은 ‘거장 신화’라는 칭송의 근거에 대한 의구심이다.

변월룡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그곳 예술아카데미 교수를 지내며 일생을 보낸 작가다. 미술관 측은 “역사의 증인이자 경계인으로서 세상과 자기 내면을 바라본 시선을 화폭에 담았다”고 의미부여를 했지만, 작가 연보를 짚어보면 이주민으로서 드물게 현지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비교적 순탄한 삶을 꾸려간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력 중 눈에 띄는 부분은 1953년 7월 소련 정부의 지시를 받고 북한으로 파견돼 15개월간 평양미술대 학장과 고문을 지냈다는 점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평양미술대를 재건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전수하라는 임무였다. 월북 화가 김용준, 벽초 홍명희, 승무를 추는 최승희를 모델로 한 초상화가 그때 그려졌다. 1994년 러시아 유학 중에 변월룡의 그림을 처음 접하고 10년 전부터 국내 전시를 추진해온 미술평론가 문영대 씨는 “1954년 북한 당국의 귀화 요청을 거부한 뒤부터 변 작가는 평생 동안 북한 입국을 금지당했다”고 설명했다.

회화, 석판화, 드로잉 등 작품 200여 점과 함께 북한을 방문할 무렵에 남긴 편지글과 사진 등의 자료가 전시됐다. 준비 중인 행사와 관련해 김일성을 만난 뒤 흥분한 속내를 역력히 드러낸 자필 서간이 특히 흥미롭다. 하지만 잊힌 것은 잊혔다는 까닭 하나만으로 모두 돌이켜 재조명해야만 할까. 프로파간다 슬로건을 노골적으로 담아낸 포스터, ‘사회주의 노동영웅’이라는 표제를 단 고전적 분위기의 초상화, 극적 이미지를 강조한 풍경화가 드러내는 것은 주어진 체제 현실에 그때그때 잘 순응하며 성실하게 일생을 살아낸 옛 화가의 자취다. ‘거장 신화’는, 그것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변월룡전#국립현대미술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