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 5억 들여…박경리 ‘토지’ 일어판 내는 사연 들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8일 17시 30분


소설 ‘토지’ 일본어판 내는 김정출 이사장 인터뷰

“한국이 위대한 문화와 독자적 언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동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디에 살더라도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이를 위해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이 작품을 꼭 번역하고 싶었습니다.”

3일 일본 이바라키(茨城) 현 미노리병원에서 만난 김정출 미노리병원장 겸 청구학원츠쿠바 이사장(70)은 최근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완역을 위해 사재 5000만 엔(약 5억3000만 원)을 쾌척해 재일동포 사이에 화제가 됐다. 그는 “말과 문화를 소중히 간직하고 보급해야 민족혼을 지킬 수 있는데 재일동포 3, 4세가 우리말을 잃어버리고 점차 일본인이 되는 것이 아쉬웠다”며 이같이 말했다.

토지 완역본을 내는 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1980년대 후쿠다케서점(福武書店)에서 총 8권으로 나온 1부를 독파했으며 2004~2005년 방영된 52부작 드라마도 전부 봤다. 2011~2012년 청소년판 토지 총 6권을 번역 출판할 때는 직접 감수를 맡았다.

그는 “청소년판을 내고 나니 원문의 맛을 살린 완역본을 내고 싶은 생각이 더 커졌다. 그러던 차에 같은 생각을 하던 한국서적 전문 출판사 ‘쿠온’을 만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번역은 최근 1권이 완료됐으며 올 가을 1, 2권이 함께 출판된다. 그는 “한국 문화의 힘을 일본인들에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자신이 세운 청구츠쿠바 중고교에서도 매주 수요일 수업이 끝난 후 드라마 ‘토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주변 재일동포 중에는 도쿄대나 명문 의대를 졸업한 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말과 문화를 모르니 결국 마음속의 버팀목이 없어 힘들어하더라”며 민족문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년 전 학교를 세운 것은 대학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 초중고를 다녀야 했던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김 이사장은 “지금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열 조선학교는 문을 닫기 직전이고 도쿄 한국학교는 주재원 자녀 등 뉴커머 위주”라며 “재일동포 3,4세들이 민족교육과 입시교육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일본학교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시명문 민족학교’라는 꿈을 위해 30년 넘게 병원을 운영하며 번 돈을 모두 쏟아 부었다. 김 이사장은 “600명 정원에 아직 학생이 60명 남짓에 불과해 매년 큰 적자가 난다. 병원에서 더 열심히 일해 충당할 수밖에 없다”며 각오를 다졌다.

재학생은 재일동포, 한국인 유학생, 일본인 학생이 3분의 1씩이다.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한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온 한국인 유학생 중 일부가 흡연 등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퇴학시키기도 했다.

일장기를 게양하고 기미가요를 제창하라는 문부과학성 지도요령 때문에 고민도 했다. 결국 2014년 입학식에서는 한일 양국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도 둘 다 불렀지만 지난해는 양국 국기만 걸고 국가는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토지 완역 비용을 낸 그지만 정작 토지 한국어판은 다 읽지 못했다. 대학시절 뒤늦게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고 인터뷰도 한국어로 진행할 수 있을 정도가 됐지만 사투리가 포함된 원고지 3만1000장의 대작을 읽는 것이 아직 무리라고 했다. 그는 “제대로 번역이 되면 원본과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천천히 읽고 싶다”며 웃었다.

이바라키=장원재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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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 2016-03-08 23:13:08

    인터뷰했는데, 사진이 없네요...

  • 2016-03-08 19:12:57

    박경리는 민주화세력 토지는 사회주의 표방한 부자와가난의 역설적 표현으로 자본주의 괴리를 주장한 소설이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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