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분식점을 운영하며 홀로 남매를 키우던 억척 아줌마는 인생을 바꿀 중대한 결심을 한다. 그렇게 시작된 사법고시와의 싸움은 10년 만에 그의 승리로 끝났다. 소통의 달인이라 불리며 6년째 송파구를 이끌고 있는 박춘희 구청장.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과 그가 만들어가는 송파구의 비전.
지난해 송파구청이 구민들을 대상으로 정주의식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6.6%가 앞으로도 계속 송파구에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 구민들이 송파구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건 바꿔 말하면 이곳이 그만큼 살기 좋은 동네라는 의미다. 그 배경으로는 전통적인 부촌에 석촌호수와 올림픽공원으로 대표되는 쾌적한 자연환경, 다양한 문화 및 체육 시설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유엔 공공행정 대상(2015년)을 수상할 정도로 탁월한 행정 서비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심에는 2010년 민선 5기로 구청장에 당선된 후 연임에 성공해 6년째 구정을 이끌어오고 있는 박춘희(62) 구청장이 있다. 2월 초 만난 박춘희 구청장은 그간의 성과에 보람을 느낀다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을 잊지 않았다.
“지난해 전 직원이 한마음이 되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 구정 전 분야에서 골고루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죠. 5월에는 ‘공공행정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유엔 공공행정 대상을 수상했고, 9월에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주민 삶의 질 만족도 조사에서 송파구민의 만족도가 서울시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또한 11월에는 국민안전처의 지역안전지수 공개에서 우리 구가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자치구로 평가받았습니다. 여러 수상을 통해 그간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것도 기쁘지만 그보다 구민들이 송파구에 사는 것에 만족해하신다는 점에 더욱 자부심을 느낍니다. 물론 부족한 부분도 있어요. 기초자치단체가 복지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저소득층이나 소외 계층을 위한 정책 개발에 더욱 힘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변호사에서 구청장에 이르기까지 순탄하고 화려한 길을 걸어온 듯하지만 박춘희 구청장 역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경남 산청 출신의 꿈 많고 당찬 소녀였던 그는 부산대 졸업 후 결혼해 평범한 가정을 꾸렸으나 30대 중반 한 차례 아픔을 겪고 이후 어린 남매를 데리고 상경해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분식점을 운영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큰 기쁨이었지만, 홀로 아이들을 양육하며 가게까지 운영하는 건 너무 벅찬 일이었다.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는 사법고시를 선택했다. 대학 졸업 후 정당사무소에서 일하며 부산대 행정대학원을 다닌 경험과 먼저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던 오빠의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 웅변도 잘하고 정의감 강했던 그를 두고 “춘희는 커서 ‘제2의 박순천(4선을 지낸 대표적 여성 정치인)’이 될 거야”라고 말하던 동네 어른들의 말도 알게 모르게 힘이 됐다. 그렇게 시작한 도전은 10년이 지나서야 결실을 맺었다. 마흔아홉 살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박춘희라는 이름 앞엔 ‘여성 최고령 합격자’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어둠의 긴 터널에서 벗어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먼저 눈을 돌렸다. 고시 공부를 하면서 부닥쳤던 사회 문제를 변호사 활동을 하며 하나씩 풀어가고자 했다. 송파구를 중심으로 무료 법률 상담을 하다가 지역 발전에 일조해야겠다는 뜻을 품고 행정가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그가 구민들로부터 ‘소통의 달인’이라거나 가까운 사람처럼 정이 느껴진다는 말을 많이 듣는 건, 이러한 인생 여정이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 있었던 아들의 결혼식에서도 박 구청장의 소탈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당시 그는 구청 직원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양가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혼사를 치렀다. 뒤늦게 소문을 들은 기자가 홍보실에 확인 요청을 하자 담당자가 “나도 처음 듣는 얘기”라며 도리어 박 구청장에게 문의했을 정도다.
“떠들썩한 결혼식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하고, 화려하게 식을 치르려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런 점들 때문에 결혼 자체를 기피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젊은이들도 많잖아요. 그런 걸 고려해서 조용히 치렀는데,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아들 내외가 정말 행복해 보이더군요. 저희 가족에겐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뜻깊은 결혼식이었죠. 나중에 딸이 결혼할 때도 이번처럼 소박하게 식을 치를 생각이에요.”
직원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아들 결혼식
박춘희 구청장과의 인터뷰는 석촌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송파구 롯데월드몰 내 서점 반디앤루니스에서 진행됐다. 독서는 송파의 품격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박 구청장은 2012년부터 ‘책 읽는 송파’ 사업을 전개, 주민들이 어디서나 책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독서 인프라를 조성하고, 생활 속 책 읽기 운동을 벌여왔다. 공원 속 책장, 공유책장, 무인책장 등이 주민들에 의해 확대·운영되고 있고 책이 있는 카페 10곳을 발굴, 송파형 북카페로 인증했다. 매년 10월에는 3만5천여 명이 참가하는 전국적 규모의 ‘책 읽는 송파 북 페스티벌’이 열린다.
“요즘 사람들은 궁금한 게 생기면 인터넷 검색을 많이 하는데,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되는 큰 지식이나 지혜는 사색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사색의 바탕이 되는 것이 독서지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책 읽는 송파’ 사업입니다. 공원, 버스 정류장 등 곳곳에 책을 비치해놓고 자투리 시간에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게 그 시작이었는데, 요즘은 구민들로부터 이 사업 덕분에 책과 가까워지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졌다는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구청에서 캠페인을 실시하니까 동 차원에서도 독후감 쓰기 대회, 독서 골든벨 등 이벤트를 마련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고 있죠.”
‘책 읽는 송파’는 송파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구민들의 호응도와 만족도가 꽤 높은 사업 중 하나다. 독서는 가시적으로 금방 효과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의 삶의 질과 품격을 높이는 일인 만큼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책 박물관 건립이 있다.
“책 박물관은 ‘책 읽는 송파’ 사업의 대단원의 막이면서 새로운 시작이에요.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단지에 부지는 마련돼 있고, 구체적인 콘셉트는 현재 구상 단계에 있지만 책 전문 박물관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할 것입니다. 책의 내용적 가치에 주목하고, 책이 인간에게 주는 효용을 조명해 자연스럽게 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책의 다양한 의미와 해석을 찾고 비교해 익숙했던 책의 새로운 의미와 이면을 밝혀나가게 될 것입니다. 많은 분의 의견이 모일수록 더 훌륭한 박물관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 박물관 건립에 구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송파구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호수 등에서 한성백제 시대 유물과 유적이 발견됨에 따라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 또한 1백23층 롯데월드타워 건설과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 위례·문정지구 개발 사업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박춘희 구청장은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누구나 머무르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 김명희 기자 | 사진 · 홍중식 기자 | 디자인 · 최정미 | 장소협조 · 롯데월드몰 애비뉴엘&반디앤루니스 의상협찬 · 안윤정앙스 | 헤어&메이크업 · 파크뷰칼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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