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만 보면 실물인지 모형인지 아무리 봐도 몰라
美제작사 소속 박지훈 작가와 ‘나를 만들기’ 패기찬 도전
《 완구(玩具)가 아니다. 아이들 장난감과 달리 실제 형상을 축소한 ‘전시 및 감상용’이다. 최근 6인치(15cm) 내외의 초정밀 피규어(인간이나 동물 모형)를 수집하는 30, 40대 남성이 늘고 있다. 실물인지 모형인지 구분이 어려운 피규어 가격은 수십만 원에 이른다. ‘한 번 사볼까’라고 고민하던 기자. 주머니 사정이 만만치 않다. 불현듯 ‘나를 피규어로 만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
○ 가설: ‘나’를 만들 수 있을까?
미국 유명 피규어 제작사인 ‘사이드쇼’ 소속 박지훈 작가(32)의 경기 부천시 오정구 작업실을 최근 방문했다. 그는 영화 ‘스타워즈’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를 만들어 큰 호응을 얻었다. 사정을 설명하자 박 작가는 스컬피(sculpy)라는 말랑말랑한 살색 점토를 꺼냈다. 열을 가하면 단단해져 피규어 얼굴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극사실(極寫實) 피규어 얼굴은 거의 손으로 제작합니다. 먼저 자료부터 수집해야 해요. 전지현 피규어를 만들고 싶다면 모든 각도의 전지현 씨 얼굴 사진을 모아야 합니다. 사진과 대조하며 스컬피로 빚고 깎고, 또 빚고 깎고….”
나무젓가락에 스컬피 덩어리를 붙인 뒤 얼굴형과 눈, 코를 만들었다. 정교하게 다듬는 도구인 스패튤라를 썼지만 불가능했다. 철저히 전문가의 영역인 셈. 국내 피규어 아티스트 중 80% 이상은 미대 출신이다. 박 작가도 홍익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국내 피규어 아티스트들은 해외 피규어 회사의 스카우트 대상이다. 특유의 손재주로 정교한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유명 피규어 회사 핫토이(홍콩) 메인 디자이너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다.
배우나 영화 캐릭터를 똑같이 만들려면 얼굴 특징을 절묘하게 표현해야 한다. 저작권자의 허락도 필수다. 헐크 피규어를 만들려면 저작권자인 월트디즈니사에 캐릭터 사용료(1년에 5000만 원 내외)를 낸 뒤 제작 중인 모형을 확인받아야 한다. 완성 전 이미지 유출도 금지다. 자사 캐릭터가 어설프게 만들어져 상품화될 경우 이미지 하락으로 디즈니가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는 그나마 나아요. 배우들은 본인이 생각하는 특정 이미지를 더 부각시켜 달라고 요구합니다. 실제 얼굴과 달라지죠.” 내 피규어의 저작권자는 ‘나’. 기자의 얼굴 중 잘생겼다고 생각한 부분을 극대화해 얼굴을 만들기로 했다.
○ 결론: 초정밀은 꿈도 못 꿔… 겨우 ‘나’를 만들다
피규어 보디(몸통)는 3차원(3D) 프린터로 만든 뒤 에나멜 물감을 입힌다. 이 역시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상용화된 보디(6∼12인치)를 온라인에서 5만∼10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 의상도 5만 원 내외로 살수 있다. 박 작가는 “홍콩의 엔터베이 등 유명 피규어 회사는 피규어 얼굴, 몸, 의상을 3명의 전문가가 따로 만들어 캐릭터를 완성한다. 보통 1, 2년 걸린다”고 했다. 완성한 피규어는 중국 공장으로 보내져 금형을 뜬 뒤 대량 생산된다.
박 작가의 도움으로 실물보다 잘생긴 얼굴을 만들고 시중에 파는 피규어 보디를 붙여 어설픈 ‘나’ 피규어를 완성했다. 의상은 고르지 못해 벌거숭이 상태. 박 작가는 “동네 조소학원 가서 한두 달만 배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성인용 모형 시장은 5000억 원대로 추산된다. 피규어갤러리 이상진 대표는 “한국은 세계 피규어 시장에서 강세를 보일 인프라를 갖췄다. 다만 피규어를 아이용 완구로 보는 시선 때문에 장난감과 같은 규제가 적용된다. 산업 육성을 위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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