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의 시의 눈]코를 가져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4일 03시 00분


코를 가져갔다 ―이정록(1964∼)

누구나 죽지. 똥오줌 못 가리는 깊은 병에 걸리지. 어미에게 병이 오는 걸 걱정 마라. 개똥 한 번 치워본 적 없다고 발 동동 구르지 마라. 지극정성으로 몸과 마음 조아리다보면 감기가 올 게다. 감기가 코를 가져가겠지. 냄새만 맡을 수 없다면, 넌 내 사타구니에서 호박꽃이나 고구마 밥을 꺼내어 신문지에 둘둘 감쌀 수도 있을 게다.

나 때문에 독감에 걸렸구나. 삼우제 끝나면 씻은 듯이 나을 거다. 잠시 달아났던 코는 새것이 되어서 황토무덤 앞에서 킁킁대겠지. 네 콧구멍에서 새봄이 시작될 거다. 그게 회춘이란다. 가족이란 언제든지 코를 주고받는 사이지. 새끼가 여럿이다 보니 어미 코는 누가 베어간 것 같구나. 먼 훗날 너도 이렇게 말하렴. 잠시 코를 베어갔다가 돌려주겠노라고. 곧 봄이 돌아올 거라고.


치매 걸린 어머니가 실금한 옷을 옷장에 숨겨 두었다는 저미는 이야기(황지우, ‘안부·1’)며, 환갑 지난 아들이 아흔 넘은 아버지를 아기 안듯 안아 오줌 뉘는 장면(문인수, ‘쉬’)이 떠오른다. 우리 몸은 본래 다른 몸이 만들어준 몸이니, 언젠가는 이런 황망한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낳아준 몸의 고난을 받은 몸의 수고로 갚아드리는 일을 이 시는, 바로 그 어머니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나는, 앞날을 미리 점검하여 의젓이 자식을 훈도하는 이 어머니의, 당당한 목소리가 좋다. 내가 병들어 용변을 못 가리면 네게 감기가 올 거다. 너는 냄새를 못 맡을 테니 내 오줌똥도 꽃이나 음식처럼 태연히 치울 수 있을 거다. 물론, 네가 ‘지극정성’을 다한다면 말이지.

가르침은 임종 너머까지 이어진다. 넋이 된 어머니가 지상의 아들에게 말한다. 이제 마음껏 새봄의 향기를 맡아라. 그리고 너도 나처럼, 그 고난의 시간이 오면, 네 자식의 코를 ‘독감’으로 베어갔다가 돌려주어라…. 하하하. 천연덕스럽기도 하시지. 생각하면 저 궂은일은, 먼 옛날에 어머니가 지극정성으로, 코가 떨어져 나가도록 했던 일이다. 그러니 당신의 실금을 수습하는 것도 받은 걸 고스란히 갚아드리는 일. 아니, 어떻게 해도 다 갚아드리지 못하는 일.

이영광 시인
#코를 가져갔다#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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