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10>그림 같은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5일 03시 00분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 쾌락의 정원’.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 쾌락의 정원’.
‘그림 같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흔히 멋진 경치, 황홀한 순간, 아름다운 자태를 일컫습니다. 하지만 모든 그림이 보기에 좋고, 느끼기에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1450∼1516) 그림이 그렇습니다. 보는 이를 언짢게 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는 종교적 주제를 많이 그렸습니다. 성인이나 순교자의 삶과 기적을 즐겨 다룬 것은 아닙니다. 대신 인간의 타락과 죄의 심판을 세심하고, 적나라하게 그렸지요. 종교적 긴장감이 고조되었던 당대 북유럽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까요. 그의 미술은 염세적 기운이 짙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한데 뒤엉킨 인간 군상들로 한층 고조됩니다. 쾌락과 욕망으로 타락한 자들입니다. 화가는 이들을 지옥에 몰아넣고, 붓으로 잔인하게 벌했습니다.

‘세속적 쾌락의 정원’은 3개의 화폭으로 구성된 제단화입니다. 그림 정중앙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쾌락의 정원이 자리합니다. 왼쪽과 오른쪽 날개에 각각 에덴동산과 지옥 풍경이 펼쳐지지요. 지옥은 무시무시한 형벌의 장소입니다. 칼에 잘린 귀가 나뒹굴고, 화살이 알몸을 관통한 죄인도 여럿입니다. 이 모든 일의 냉혹한 주관자는 괴물들입니다. 하나같이 끔찍합니다. 단순히 추한 것이 아닙니다. 기괴합니다. 악의 심판관은 새의 머리에 파충류 몸통을 가졌습니다. 죄의 고문관은 인간의 얼굴에 다리는 나무입니다.

화가의 천재적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군요. 괴물들은 동물과 식물, 생물과 무생물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통념도 벗어나 있지요. 뒤섞임의 존재들은 개념적 합의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낯설고 불편합니다. 이런 불쾌한 감정을 그로테스크하다고 합니다. 그림 속 지옥 풍경이 전하는 꺼림칙함 같은 것이지요.

그로테스크 미술의 대가, 보스가 부쩍 생각납니다. 화가의 타계 500주기를 맞아 네덜란드와 스페인에서 펼쳐지고, 준비 중인 전시 소식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형 미술관에 소장된 그의 미술품을 둘러싼 근자의 위작 논란 때문만도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언급되는 충격적 사건들 때문입니다. 이기심으로 인간의 도리를 외면한 터무니없는 사건이 그림 속 조류와 파충류의 결합 같습니다. 보편적 상식을 넘어선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그림 속 인간과 식물의 합체처럼 혐오스럽습니다. 괴상함을 더해가는 세상이 15세기 말 화가의 그림처럼 그로테스크합니다. 그림 같은 세상입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세속적 쾌락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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