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에 이목이 집중된 한 주였다. 어디나 그렇듯 문단과 출판계에서도 인공지능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편집자 A 씨는 “인공지능이 책 만드는 과정 중 어느 영역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편집자들 간에 많은 얘기가 오갔다”고 전했다. 공통된 의견은 프로그래밍만 잘돼 있으면 교정보는 건 거의 완벽하리라는 것이었다. 문법 규칙, 상식적인 용도, 언어의 경향성 등에 대한 자료를 많이 축적해 인공지능이 습득하도록 하면 ‘인간보다 정확하게’ 교정을 볼 수 있다는 예측이었다.
소설 창작의 일정 부분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란 견해도 있었다. 가령 작품에서 배경 묘사를 할 때, 수많은 소설에서 쓰였던 것들을 활용해 단어를 조합하면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다. 데이터베이스(DB)가 쌓일수록 풍성하고 섬세한 묘사가 가능할 것 같다는 추정도 나왔다.
이야기 만들기는 어떨까. 앞서 소설가 윤이형 씨는 5년 전 발표한 단편 ‘로즈가든 라이팅 머신’에서 소설을 대신 써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등장시킨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 단어만 넣으면 멋진 소설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런 컴퓨터 프로그램이 소설에만 나오는 건 아니다. 실제로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드라마티카 프로’를 비롯한 서사 창작 지원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소프트웨어들은 축적된 DB를 활용해 캐릭터 설정, 스토리 구성 등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런 컴퓨터 프로그램이 발달을 거듭한다면 막장 드라마나 로맨스 소설 같은 전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콘텐츠들은 인간보다 더 완성도 있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인 오은 씨는 “인공지능이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지만 이른바 ‘패턴’ 이외의 것이 나올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모든 창작물에선 ‘계산되지 않음’에서 오는 ‘즉흥적인’ 면모가 중요한데, 그 부분을 인공지능이 채워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즉흥성을 창의성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시를 쓸 수 있겠느냐고 묻자 시인 B 씨는 어려울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 따르면 “시를 쓰는 작업은 언어를 조합하는 게 아니라 언어를 버리고 깎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인공지능이 시를 쓴다 해도 나쁜 패러디의 느낌일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결로 얻어진 큰 수확 중 하나로는 인공지능의 괴력뿐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관심에도 불이 지펴졌다는 것일 게다. 그가 거둔 한 번의 승리가, 입력된 자료에 기반을 두고 움직이는 알파고를 넘어서는 창의적인 수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야기에 풍성함을 더하는 데 인공지능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기의 대결이 그러했듯 문학의 창의성도 오롯이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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