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풀여치 있어 풀여치와 놀았습니다 분홍빛 몽돌 어여뻐 몽돌과 놀았습니다 보랏빛 자디잔 꽃마리 어여뻐 사랑한다 말했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흰 사슴 마시고 숨결 흘려놓은 샘물 마셨습니다 샘물달고달아낮별뜨며놀았습니다 새 뿔 올린 사향노루 너무 예뻐서 슬퍼진 내가 비파를 탔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잡아주고 싶은 새들의 가녀린 발목 종종거리며 뛰고 하늬바람 채집하는 나비 떼 외로워서 멍석을 펴고 함께 놀았습니다 껍질 벗는 자작나무 진물 환한 상처가 뜨거워서 가락을 함께 놀았습니다 회화나무 명자나무와 놀고 해당화 패랭이꽃 도라지 작약과 놀고 꽃아그배 아래 낮달과 놀았습니다 달과 꽃의 숨구멍에서 흘러나온 빛들 어여뻐 아주잊듯한참을놀았습니다그대잃은지오래인 그대 만나러 가는 길 내가만나논것들모두그대였습니다
내 고단함을 염려하는 그대 목소리 듣습니다 나, 괜찮습니다 그대여, 나 괜찮습니다
이 시를 읽는 초반에는 꿈같은 풍성함을 만나게 된다. 마치 꽃동산에 도착한 아이처럼 한바탕 신이 난 모습이다. 풀여치가 있으며 풀여치와 놀고 몽돌이 있으며 몽돌과 논다. 샘물과 사향노루마저 이 흥겨운 마음에 동참하는 듯하다. 그런데, 중반쯤부터는 몰래 숨겼던 마음을 조금씩 들키고 만다. 너무 예쁜 것을 보니 오히려 슬퍼지고, 함께 다니는 나비 떼를 보니 외로워지고, 자작나무 껍질을 보니 잊었던 상처가 보인다.
화자가 즐거웠던 것도 슬펐던 것도 모두 다 ‘그대’ 때문이다. 화자에게 ‘그대’란 없어서 슬픈 사람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서 기쁜 사람이다. 아마도 네가 잠든 곳으로 가는 길이어서 기뻤을 것이고, 반대로 네가 잠든 곳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슬펐을 것이다. 시인은 작품 말미에 놀라운 반전을 숨겨 두었다. 화자가 만난 모든 풀여치, 몽돌, 노루, 나비, 나무는 다 또 다른 ‘그대’였다는 것. 그렇게 떠난 ‘그대’는 사방 천지에서 다시 돌아왔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시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 믿음이 참 가없고 부럽다. 우리에게도 떠났던 고운 사람, 만물이 되어 안겨온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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