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밥 소레이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위에 현대의 인공 장기와 의료 보철물을 그려 넣은 그림. 기하학적 세계와 조화 속에서 인간을 중심에 놓는 르네상스적 사고는 사이보그에 대한 인식에도 이어진다. 김영사 제공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지 얼마 안 된 요즘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이 책의 부제는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최근 가장 유명한 사이보그는 가슴 중앙에 아크 원자로를 심은 영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일 게다. 거리에 아이언맨이 나다니는 세상은 아직 아닌 이상 ‘탈인간시대’를 고민하는 것은 호들갑 아닐까?
저자가 말하는 사이보그의 범주는 생각보다 넓다. 책은 사이보그를 ‘자연적 요소와 인공적 요소를 하나의 시스템 안에 결합시킨 자가 조절 유기체’로 정의한다. 저자에 따르면 낙마사고를 당해 전동침대와 휠체어 등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아 살았던 영화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슈퍼맨’의 그 배우다)는 사이보그다. 심장 질환을 앓는 환자가 심장박동 조절장치를 이식받았다면 그도 사이보그다.
저자는 이 같은 정의를 바탕으로 사이보그가 가져올 수 있는 정치, 윤리, 문화적 문제를 고민한다. 미래 사이보그의 시민권 문제도 그중 하나다. 저자는 ‘튜링 테스트’(기계가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화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지능을 가졌는지 판별하는 실험)를 거쳐 정치 공동체의 담론에 참여할 수 있다면 사이보그를 시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너무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시민권 문제도 그렇다. 훼손된 신체 기능을 보완한 정도의 인간이라면 시민권이 있는 게 당연하고, 자의식이 있고 시민권을 논의할 정도로 지능이 높은 기계 중심 사이보그라면 아직 영화 속의 일이다. 사이보그를 너무 폭넓게 정의한 것부터가 문제다. 저자의 논지대로라면 독감 백신을 맞아도 사이보그이고, 라식 수술을 받았어도 사이보그다.
책은 사이보그라는 명명에 너무 신경 쓰지 않고 읽을 때 오히려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향정신성 약물의 증가, 인공 달팽이관이나 음경을 비롯한 각종 인공 장기 이식, 이종 장기 이식, 인공수정, 유전공학 치료 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생물과 무생물, 사람과 기계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어떤 도구 기계 사이보그를 보유해야 하며, 어떤 것을 축출하고 또 만들지 않아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캐릭터가 떠오를 때가 있다. 저자는 아마 다소 수다스럽고, 본인이 위트가 넘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 같다. 저자는 ‘감사의 글’에 “모든 오류가 다 나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세가 나의 것이므로, 당연히 그 책임은 내가 질 것이다”라고 썼다. 책에 종종 등장하는 이런 말투가 영어로는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것은 아쉽다. 번역 탓이라기보다 저자의 원래 글이 다소 산만한 편인 것 같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지만 바쁜 이라면 책 앞부분 해제를 꼼꼼히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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