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셰익스피어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9일 03시 00분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제임스 샤피로 지음/신예경 옮김/292쪽·1만9800원·글항아리

라디슬라스 폰 차초르스키의 1875년작 ‘햄릿에 등장하는 배우들’. 그간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은 허상이라는 논쟁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프랜시스 베이컨, 옥스퍼드 백작 등이 셰익스피어 희곡의 원작자로 거론됐다. 저자는 여러 인물이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에 다양한 자료를 첨부해 논쟁의 역사를 되짚어간다. 글항아리 제공
다시 셰익스피어(1564∼1616)다. 문학과 철학, 심리학, 그리고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인간적 모티브를 항상 던져주는 위대한 극작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꼭 400년이 되는 이 작가의 아우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세다.

그런데 그 작품들을 쓴 사람이 정말 그일까? 귀족도 아니었고 고리대금업을 했고 아내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그 셰익스피어가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을 정말 썼을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실은 셰익스피어가 쓴 게 아니라는 주장은 200여 년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의 저자인 제임스 샤피로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 논쟁에 다시 한번 불을 붙인다. 그는 이 책에서 셰익스피어 원저자 논쟁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밝힌다.

저자가 풀어내는 원작자설 논란사는 드라마틱하다. 엘리자베스 1세와 프랜시스 드레이크경에게 셰익스피어가 바친 시, 셰익스피어의 회고록, 그때껏 발견되지 않았던 ‘보티건’의 극본 등이 1700년대 후반 무더기로 발굴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실은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라는 청년이 위조한 문서들이었다. 윌리엄 헨리의 사기 행각은 곧 드러났지만 이는 원작자 논쟁이 불붙게 된 계기가 됐다. 만들어진 문서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셰익스피어 문학에 대한 호응이 컸다는 것, 그만큼이나 셰익스피어에 대한 자료가 빈약했다는 것을 뜻한다. 셰익스피어 원작자 논쟁이 피어나는 지점이다.

저자는 이 논쟁사를 흥미롭게 전개한다. 그가 보기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은 ‘작가의 생애가 작품에 반영된다’는, 18세기 이후 전개된 문학사의 이론 때문이다. 이 이론으로 인해 셰익스피어 작품의 실제 작가로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과 옥스퍼드 백작이 지목된다. 베이컨 원저자를 내세운 사람은 1800년대 저술 활동을 했던 미국 여성 델리아 베이컨이다. 그는 차분하고 박식하며 독서를 좋아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성격과 기질로 볼 때 셰익스피어 희곡들의 저자로 맞춤하다고 여겼다. 저자의 성품과 삶의 궤적이 문학작품에 반영된다고 확신했던 믿음이 바탕이 된 주장이었다.

옥스퍼드 백작은 어떨까. 옥스퍼드설을 강하게 지지한 사람은 흥미롭게도 프로이트다. 작품 ‘햄릿’을 토대로 유명한 오이디푸스 이론을 세운 것으로 잘 알려진 그이다. 그런 프로이트는 셰익스피어의 미천한 신분에 비해 작품의 문화수준이 대단히 높다는 데 의구심을 갖는다. 프로이트는 당시 제기된 ‘실제 저자는 옥스퍼드 가문의 17대 백작 에드워드 드 비어’라는 주장을 지지하게 된다. 저자가 보기에 프로이트의 주장 역시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아마도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이 책에서 결국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맞다.” 그는 원작자설에 의문을 제기해 온 사람들이 실은 자신들만의 논리 안에서 주장을 펼칠 뿐 직접적인 물증을 내놓지 못한다는 데 주목한다. 샤피로 교수는 셰익스피어 시대에 문학이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한 시대적 정황을 하나씩 밝혀나감으로써 원작자설의 뿌리를 깊숙이 파고들어간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희곡들은 작가의 생각이나 경험을 투영하지 않았다는 것,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사회 구조나 가족 형태도 실제로는 그 시대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 그렇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셰익스피어가 썼을까 아닐까’라는 미스터리한 질문을 던지고 이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추리물처럼 읽힌다. 정통 아카데미에 속한 저자가, 아카데미에선 전혀 관심 갖지 않을 주제에 천착했다는 것도 놀랍다(사실 학계에서 셰익스피어가 썼는지 안 썼는지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러나 탐정소설 같은 이 질문은 실은 중요하다. 저자가 밝혔듯 “그 희곡을 누가 썼든 뭐가 달라지지?”에 대한 대답은 “많은 것이 달라지지”다. 저자의 말대로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사고방식이, 원작자설에 대해 그간 벌어졌던 숱한 논쟁에 대한 사고방식이, 그리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제임스 샤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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