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인간은 고요한 존재이다.’ 18세기 독일의 미술사학자 빙켈만이 말했습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참된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특히 ‘라오콘 군상’을 보라 권했지요.
조각은 기원전 1세기경 제작되었습니다. 인체를 다룬 미술이 사실성을 더하던 때였습니다. 생생한 표정과 격렬한 동작으로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고자 했답니다. 이런 시대의 특징이 잘 드러난 조각은 한 사람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하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의 합작품이었지요. 이 조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506년이었어요. 땅속에 묻혀 있다 발견되었거든요. 감탄을 자아낼 만큼 예술성이 뛰어났습니다.
조각 정중앙 인물이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입니다. “그리스 군대가 숨은 목마의 트로이 성 진입은 위험하다.” 트로이의 미래를 위해 조언했지요. 이런 행동이 트로이 함락을 원했던 바다 신의 심기를 거슬렀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은 너그러운 편은 아닙니다. 특히 신의 위엄에 도전한 인간에게 가혹했지요. 분노한 포세이돈은 라오콘과 두 아들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렸습니다.
조각은 신의 저주를 사실적으로 전합니다. 동시에 이에 맞서는 인간의 정신력도 주목하게 합니다. 바다 독뱀의 공격에 라오콘 부자는 꼼짝할 수 없습니다. 참담한 순간이지만 절망의 흐느낌은 없습니다. 극한의 상황이지만 투혼은 계속됩니다. 이들이 지닌 유일하고 강력한 무기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의지일 것입니다. 그 모습이 그리스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적 인간을 닮았습니다. 고대인들은 고통을 견디고, 품격을 지키고, 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을 으뜸으로 여겼지요. 그리스 미술의 정수로 평가되는 ‘라오콘 군상’이 실감나게 품은 것은 시대의 열망이었습니다. 이상적인 인간의 위대함이었습니다.
세기의 바둑 대국 소식에 인공지능과 겨룰 인간의 심적 부담감만 염려되었습니다. 우연히 네 번째 대국이 시작될 무렵 소위 ‘인간 대표’를 보았습니다. 세 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을 잡는 침착함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실로 고요했습니다. ‘어쩌면 그리스 미술이 갈망했던 인간의 아름다움, 빙켈만이 말했던 존재의 고요함이 이런 것일지 모르겠다.’ 그날 밤 전해 들은 승전보와 무관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이 주인공인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이 현실 세계에도 고요해서 아름다운 존재가 있었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