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서울역 인근 중국집. 짬짜면을 시켜 먹는 에이전트 5(김윤종 기자) 에이전트 7(임희윤 기자). 식사 중인 군인 무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들의 얼굴이 번쩍였다. 사제 로션의 효과? 아니었다. ‘군바리’라는 세상의 비하에 주눅 들었던 그들의 얼굴에 알 수 없는 자신감…. 상병이 거들먹거렸다. “요즘은 제복 입은 남자가 인기야.” 》
음. 인정하기 싫었지만 검정 ‘슈트’를 입는 두 요원도 이상기류를 감지한 터. TV만 켜면 ‘미군’ 같은 신비감을 주는 황토색 전투복을 착용한 ‘태양의 후예’(KBS2) 속 유시진 대위(송중기)가 남자가 봐도 멋지게 웃는다. 또 다른 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MBC)의 주인공 해군 장교 차지원(이진욱)은 하얀 눈 같은 해군 제복을 차려입었다. 아이돌 그룹들도 제복을 입고 군무를 춘다. 두 요원조차 슈트를 제복으로 바꿀지 논의하던 찰나.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뿔싸! 속고 있는 것 아닐까. 제복에 대한 환상은 지구인의 사고를 획일화된 의상에 가두려는 외계인의 농간?”
○ ‘제복 판타지’에 빠진 대한민국
우리는 허겁지겁 종로로 가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제복을 조심하라고….
“정신 차릴 건 당신들이에요. 제복 이미지가 얼마나 강렬한데요.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 같은, 완벽한 느낌? 하드한 훈련 다 견디고 거칠게 땀을 흘릴 생각하면, 꺅.”(대학생 김유진 씨)
하지만 제복에 반감을 가진 이들도 있었으니…. ‘군필’들이 항변한다.
“여자들이 생각하는 군인 남자와 실제 군인 남자는 다르지 말입니다.”(회사원 최진수 씨)
남성들이 증언하는 ‘제복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자외선에 노출돼 술 취한 듯 거무죽죽해진 붉은 얼굴, 개기름 좔좔 흐르는 피부, 베이징 올림픽 개최 전 웃통 벗은 중국 아재 같은 짧은 머리. 이를 완성하는 것이 후줄근 군복.
제복에 빠진 그녀들은 발끈한다.
“질투하시네. 남자들은 걸그룹 교복에 빠져 살잖아요.”(송중기 팬 이모 씨)
걸그룹 ‘여자친구’, 엠넷 ‘프로듀스 101’의 연습생 소녀들 역시 패션 콘셉트를 교복으로 잡아 삼촌 팬의 환호를 끌어냈다.
우리는 제복에 대한 남녀 모두의 강렬한 지지를 막을 수 없었다. 임무가 실패라고 생각한 순간 실마리를 찾았다. 송중기 제복은 일반 군복과는 달리 칼날 같은 핏(fit)과 ‘간지’가 쏟아지도록 1급 디자이너가 특수 제작한 것으로 추론했다. ‘태양의 후예’ 의상 담당 이정혜 씨를 만났다. “육군에서 의상 협찬을 받았죠. 국군이 해외 파병 때 입는 제복이에요. 수선하지 않고 그대로 썼어요.”
육군본부를 방문하니 ‘개구리 전투복’이라 불리던 얼룩무늬 제복은 도입 2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상태.
“제복이 멋지게 변한 이유요? 지금은 상의 37개, 하의 33개 등 치수가 세분되다 보니 수많은 조합으로 자기 몸에 꼭 맞게 입을 수 있죠.”(육군 관계자)
○ ‘제복 판타지’에 빠진 사회적 함의
의상 전문가들은 ‘제복 판타지’를 다른 판타지로 치환한다.
드라마 ‘시그널’(tvN) 김보배 의상팀장 이야기다. “경찰 제복과 100% 똑같이 만들었죠. 배우들이 몸이 좋아 라인이 살아나는 거예요.”
제복 판타지의 스타는 강동원. 영화에서 사제복(‘검은 사제들’), 교복(‘늑대의 유혹’), 죄수복(‘검사외전’)까지 척척 소화해 내기 때문. 그 배경에 키 186cm, 몸무게 66kg, 얼굴 길이 20cm, 남들보다 15%쯤 길어 보이는 팔다리가 겹쳐진 ‘신체 판타지’가 있다.
“올바른 자세는 슈트를 더욱 멋지게 보이게 하는 요소죠.”(신사복 브랜드 ‘빨질레리’의 이지영 디자인책임)
남자다운 남자가 적은 상황에서 절제된 배려, 타인에 대한 헌신, 강한 체력을 제복에서 찾는다는 얘기도 나왔다. ‘명예 에이전트’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말했다. “제복은 소속감, 정체성과 관련이 있어요. 대학 학과 점퍼 붐을 보세요. 고용구조가 불안하고 불황이 이어지며 개인이 탈조직화될수록 제복에 대한 열망이 강해질 거예요.”
제복이 주는 섹시함조차 직업적 지위에서 나오는 ‘아우라’? 제복에 열광하는 심리에 생각보다 많은 지구인의 함의가 담겼다는 것을 깨달은 두 요원, 제복이 잘 어울리는 여성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청담동 주점으로 향했다.(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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