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이러면 곤란하지 말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4일 03시 00분


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세상사라고 했던가. 대박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몰고 온 언어세계의 변화를 보면 그렇다. 국방부는 최근 경직된 군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다·나·까 말투 개선 지침’을 배포했다. 공식적으로는 ‘다·나·까’를 쓰되 내무반 등에서는 ‘∼요’를 써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태양의 후예’ 때문에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어법에 맞지 않아 금지한 ‘∼말입니다’는 오히려 완전히 부활했다. 군대 언어의 대표주자로.

“지금 작업 거는 겁니까.” 극중 이치훈(온유)의 미소를 오해한 윤명주(김지원)가 꺼낸 말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이처럼 맛깔나는 대사가 시청자를 즐겁게 한다.

‘작업 걸다, 작업 중이다, 작업하다’에서 ‘작업’은 뭘까? 몰라서 묻느냐고 힐난할 독자들이 많을 줄 안다. 맞다. 이때 작업은 ‘남자가 여자를, 또는 여자가 남자를 꾀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 사전의 생각은 다르다. ‘일’만을 고집한다. 2005년 ‘작업의 정석’이라는 영화가 나올 만큼 ‘작업’은 젊은이들 사이에선 보편적인 단어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많은 이가 입길에 올린다. 이쯤이면 이 말의 생명력을 인정하고 뜻풀이를 추가할 때도 된 듯하다.

‘작업’과 비슷한 낱말이 ‘수작(酬酌)’이다. ‘수작을 떨다, 수작을 부리다, 수작을 걸다’ 식으로 쓴다. 한자에서 보듯 수작은 ‘술잔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술잔을 주고받다 보면 자연스레 정도 오가게 마련이어서 뜻이 넓어졌다. 허나 ‘수작’은 왠지 어감이 좋지 않고 작업의 말맛에 밀려 세력을 잃어가고 있다. 참고로 ‘짐작’과 ‘참작’, ‘작정’과 ‘무작정’도 모두 술 문화에서 나온 말이다.

“군인이면 여친 없겠네요. 빡세서” “와, 얄짤없네” 등에 나타난 ‘빡세다’와 ‘얄짤없다’도 재미있다. 군 당국은 빡세다를 ‘힘들다’로 고쳐 쓰도록 했지만 많은 이가 빡세다를 입길에 올린다. ‘(교과목 등이) 알차다’는 뜻으로 ‘빡세다’를 쓰기도 한다. ‘얄짤없다’는 봐줄 수 없거나 하는 수 없다는 뜻. 둘 다 국립국어원의 신어자료집에는 올라 있다.

‘태양의 후예’ 때문에 ‘∼말입니다’가 많이 쓰이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군대의 특성을 인정하더라도 어법에서 너무 벗어난 말은 순화하는 게 옳다. 그나저나 ‘송송(송중기, 송혜교) 커플’의 달달한 작업은 어떻게 될까?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태양의 후예#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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