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살이의 불편으로 많은 사람들이 문화생활을 누리기 힘들다는 걸 꼽는다. 하지만 이 문화생활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별스럽지 않다. 보통 사람에게는 영화나 운동 경기, 공연 정도가 아닐까?
이제 웬만한 중소도시에도 영화관이 있고 배구나 농구 등 실내 스포츠의 지방 경기도 일반화됐다. 축구나 야구 등의 프로구단들도 종종 연고 지역 인근의 중소도시에서 경기한다. 다만 상당 수준의 공연, 특히 유수 외국 연주자의 초청공연은 집객이 어려운 중소도시에서 드문 일인데, 최근 고무적인 경험을 했다.
비발디의 ‘사계(四季)’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이탈리아의 실내악단 ‘이 무지치’. 12명으로 구성된 체임버 오케스트라인 이들이 취입한 ‘사계’가 8000만 장 이상 판매됐다니 가히 ‘이 무지치=사계’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다. 또 이 곡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1위를 지켜 왔으니, 이들의 공연을 관람하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로망일 것이다.
4년 전 부산시민회관에서 이들의 공연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쳄발로의 청아한 금속성 소리에 매료된 나는 한 시간을 기다려 연주자들의 사인을 받았다. 올 초 이들이 우리나라를 다시 찾았는데, 지역마다 관람료가 크게 차이 났다. 같은 협연 독주자, 레퍼토리에 서울은 5만∼14만5000원, 대구는 5만∼12만 원, 창원은 3만∼7만 원이었다. 창원 대비 서울은 약 2배, 대구는 약 1.5배로 비쌌다. 물론 공연장마다 좌석의 등급별 비율, 시설 차이가 있으니 단순 비교에 한계가 있겠지만 대체로 지방에선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에 나는 예상치 못한 엄청난 보석을 발견했다. 바로 충남 금산군에서 전 좌석 1만 원짜리 균일가 티켓을 판다는 것. 특별한 지원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인구 6만 명이 채 안 되는 금산군이 운영하는 시설이지만 홈페이지 사진만으로도 공연장은 결코 얕잡아 볼 수준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2월 2일 김천에서 1시간 15분 만에 도착한 공연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음향, 조명, 운영에서 흠잡을 데가 없었다. 4년 전, 지은 지 거의 40년이 다 된 부산시민회관의 VIP석보다 훨씬 나은 좌석과 음향에서 이 무지치의 음악을 즐겼다. 이 무지치가 금산에서 연주한 사계가 서울의 그것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꼬마들의 환한 얼굴에는 사계절의 행복이 가득했다. 이 ‘1만 원의 행복’을 기획한 그분의 식견에 경의를 표한다.
김천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는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 줄곧 울려 퍼졌다. 김천에서도 이런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공연을 곧 접하게 되리라 믿는다. 사람이 의식주가 해결된다고 바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필자(54세)는 서울에서 공무원, 외국 회사 임원으로 일하다가 경북 김천으로 내려가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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