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쇼팽 갈라 콘서트장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로 객석이 가득찼다. 조성진의 열풍으로 클래식 음악계가 모처럼 봄을 맞이했다. 크레디아 제공
2월 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음악당. 클래식 전용 연주장인 이곳은 공연이 열리더라도 북적임과는 거리가 먼 장소였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연주회는 오후 2시부터였지만 오전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콘서트홀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2500여 명이지만 로비에는 3000명이 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날은 폴란드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의 갈라 콘서트가 열렸다. 한국인 최초로 대회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조성진(22)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공연은 이날 오후와 저녁 두 차례로 예매 시작 40여 분 만에 표가 매진됐다. 클래식 공연으로는 드물게 이날 암표상도 등장했다. 아이돌 콘서트가 아니고는 쉽게 보기 힘든, 아니 그 전에는 없었던 현상이었다.
조성진을 시작으로 국내 클래식 음악계가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일명 ‘조성진 신드롬’을 계기로 클래식 음악계도 모처럼 겨울잠을 깨고 봄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조성진처럼 최근 각종 국제음악콩쿠르에서 한국 연주인들의 수상이 호재로 작용했다. 지난해 퀸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2)이 한국인 최초로 기악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또 이탈리아 부소니 국제콩쿠르에서도 피아니스트 문지영(21)이 아시아인 최초로 1위에 올랐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연주인들이 늘어나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져 가고 있다. 클래식 공연장에 몰리는 20, 30대
2월 폴란드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의 갈라 콘서트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크레디아 제공우선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조성진이 참가한 쇼팽 갈라 콘서트에서도 클래식 음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직장인 이다호 씨(28)는 “평소 클래식을 듣지는 않지만 조성진의 콩쿠르 영상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공연장을 온 배수진 씨(31)는 “클래식이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정말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던 음악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들과 함께 조성진은 물론 다른 클래식 음악도 찾아 듣고 있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클래식 음악에 대한 생각이 점차 바뀌어가고 있었다. 공연 전문기획사 크레디아 공연기획팀 강민선 부장은 “여러 연주인의 국제콩쿠르 우승이 국내 시장에 활력소를 줬다. 다른 때와 달리 공연이 빨리 매진되기도 하고 기존 클래식 음악 팬들이 아닌 분들의 문의도 많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클래식 전반에 퍼지기는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단초가 된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클래식 공연을 찾는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50대 이상이 많이 찾는 외국의 공연장과 달리 국내는 최근 20, 30대의 클래식 공연 예매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손열음 등 젊은 연주인들이 주도
2월 2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손열음(29)의 공연은 여느 아이돌 콘서트 못지않은 열기로 가득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중이 뿜어내는 열기에 손열음은 앙코르 연주를 10번 넘게 들려줬다. 한 관객은 “클래식 연주회이지만 꼭 아이돌 콘서트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공연이라면 10, 20대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손열음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 김선욱(28),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29) 등 20, 30대 젊은 연주인들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클래식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유니버설뮤직의 이용식 이사는 “보통 리사이틀은 합창석까지 관객이 들어차기 힘들다. 하지만 손열음 등 젊은 연주인들은 폭발적인 관객 동원력을 보여주고 있다. 호응이나 열기로만 본다면 가요 등 대중 음악적 분위기가 물씬 난다”고 말했다.
클래식 기획사이자 매니지먼트사인 아트앤아티스트 이지혜 팀장은 “좋은 연주자들이 많이 나오면서 해외에서 한국 연주인들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함께 공연을 해달라는 제안도 많이 오고 유럽, 미국 외에 남미 등에서도 한국 연주인들의 공연을 원하는 곳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클래식 붐을 일으킬 도화선의 해
클래식 음악이 봄을 맞이한 것은 확실하다. 다만 아직은 출발선에서 막 발걸음을 뗀 정도다. 국내 클래식 공연의 흐름을 주도하는 공연기획사 빈체로의 이창주 대표는 “조성진 등 젊은 연주인들의 활약이 클래식 붐의 도화선인 것은 맞다. 이들은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접해보고 후에 이들의 5∼10%만이라도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다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는 “국내 클래식 음악의 저변이 넓어지고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올 콩쿠르 우승자들이 더 배출될 것임은 분명하다. 국내의 클래식 음악계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콩쿠르 우승자를 넘어 세계적인 거장을 배출해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