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화두話頭에 얼마나 골몰했으면 턱을 괴었던 팔이 다 부러졌을까 아니다, 부러진 것은 미륵보살님의 팔이 아니다 3일도 못 가는 우리들의 작심作心이다
무슨 마음이 얼마나 자유로웠으면 팔꿈치가 부러져나가도 턱은 무사했을까 아니다, 자유로운 것은 미륵보살님의 턱이 아니다 손바닥보다 좁은 감옥에서 벗어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중동이 툭툭 끊어지는 생각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미망迷妄의 턱을 넘어선 깨달음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 천년의 잠에서 깨어나 넌지시 한 말씀 보여주시네 그대 만약 결가부좌가 힘들면 반가부좌도 좋다고 빙긋 웃으시네
햇살도 고와라. 봄볕 따스하니 노랑, 빨강, 하양… 꽃들 온 산천에 다투어 방긋거린다. 논밭 갈고 씨 뿌리고 냉이, 쑥 나물 캐고 바쁜 일손의 계절이구나. 이때 나라 평안하신가. 백성들 더불어 삶의 기지개 활짝 펴시는가. 저 먼 옛 고구려 땅속에서 1500년 동안 화두를 들고 수행하시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국보 118호)이 마침내 불국정토에 홍복을 주실 깨우침을 들고 부스스 세상 밖에 나온 것은 1944년 평양시 평천리에서 공사하던 인부의 괭이 끝에서였다. 한 뼘 남짓의 키에 머리에는 삼산관(三山冠)을 쓰시고 고개를 숙인 채 엷은 미소를 띤 얼굴이 어찌 그리 평안하신지. 윗옷은 걸치지 않고 가는 허리에 두른 치마가 대좌(臺座)를 가리며 주름을 드리우고 있다. 연꽃무늬 받침대에 왼발을 짚고 오른발은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은 발목을 잡고 앉아 계신다. 오른쪽 팔꿈치를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있는데 팔과 손이 깨어져 나가 본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필시 손으로 턱을 괴고 사람 세상의 모든 번뇌를 벗겨줄 궁리를 하고 계실 것이다.
금동반가사유상은 신라 백제 시대의 것이 대종이었는데 이 작품은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출생지가 분명한 고구려 불상으로 삼국시대 불교미술을 겨루어 보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시인은 부처님의 팔이 없음을 보고 ‘무슨 화두에/얼마나 골몰했으면/턱을 괴었던 팔이 다 부러졌을까’라며 사람들이 손가락 하나도 다치지 않는 생각을 두고 아옹다옹하는 것을 넌지시 꾸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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