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늘을 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비행기, 글라이더, 열기구, 스카이다이빙 등이 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 비행이 있다. ‘윙슈트 활공(wingsuit flying).’ 간단히 말해 ‘날개 달린 옷’을 입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하늘을 나는 것이다.
3월 20일 오전 전남 고흥군 고흥항공센터 옆 스카이다이빙센터 드롭존. 7명의 스카이다이버를 태운 파이퍼 에어크래프트(Piper Aircraft) 10인승 경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이륙했다. 7명 중 윙슈트를 입은 사람은 2명. 이 비행기는 스카이다이버를 1만2000피트(약 3600m) 상공으로 올려 보내는 전용 수송기다.
20여 분 동안 고도를 높이던 수송기가 엔진소리를 줄이고 상승을 멈췄다. 앉은 순서대로 앞줄부터 한 명씩 비행기 밖으로 뛰어내렸다. 마지막 남은 두 명이 윙슈트를 입은 이우성 (34), 정용상 씨(28). 두 사람은 잠깐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 씨가 먼저 비행기 밖으로 몸을 날렸다. 약 2, 3초 후 정 씨도 뛰어내렸다. 정 씨는 “비행기에서 ‘이탈’하는 순간이 제일 흥분된다”고 했다.
정 씨는 팔을 몸에 붙이고 다리 날개를 약간 좁혀 먼저 뛰어내린 이 씨를 향해 강하 스피드를 높였다. 20초 후에 이 씨를 만났다. 한 사람이 하늘을 보고 눕자(back fly) 그 위에 엎드린(Belly) 자세로 날기도 했다. 두 사람은 2분가량 함께 비행을 하다 4500피트(약 1300m) 상공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곧 낙하산을 펴야 하기 때문.
이 씨는 2003년 스위스 여행 중 경험한 스카이다이빙의 매력에 푹 빠졌다. 본업은 치과의사. 주말마다 미사리 드롭존을 찾아 기본적인 라이선스 교육을 받았다. 휴가 때는 해외로 나가 한꺼번에 수십 회씩 강하체험을 쌓았다. 이 씨는 “스카이다이빙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라면 윙슈트는 확실히 날개를 달고 날아간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정 씨는 해병대 수색대 출신. 낙하훈련의 짜릿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었다. 제대 후 군에서 받은 월급과 생명수당을 모아 서울스카이다이빙학교에 등록했다. 2013년에는 미국에서 스카이다이빙 속성자유낙하(AFF) 코스도 이수했다. 정 씨는 스카이다이빙점프 경력만 600회 이상이고 베이스점프도 170회이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윙슈트 코치 자격증을 취득한 후 서울스카이다이빙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기자에게 말했다. “‘버킷 리스트’에 윙슈트 플라잉을 추가하는 건 어떨까요?”
Wingsuit?
프랑스에서 만든 날개달린 옷 창안자, 직접 뛰다 사고死 2000년대 현대적 날개옷 탄생 스카이다이빙 200회해야 점프 가능
최초의 윙슈트는 프랑스의 재단사 프란츠 라셸이 만든 날개 달린 옷이었다. 그러나 라셸이 1912년 자신이 만든 옷을 직접 입고 에펠탑에서 뛰어내리다 즉사하는 바람에 한동안 윙슈트 비행은 금지됐다. 현대적인 윙슈트가 팔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부터. 날다람쥐의 모습에서 착안해 팔과 몸통, 두 다리 사이에 낙하산용 천을 붙여 만든 ‘날개옷’이었다.
윙슈트 점프는 스카이다이빙 200회 이상의 경력과 윙슈트 교육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스카이다이빙은 18세 이상이고 심장질환만 없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일반 스카이다이빙은 3600여 m 상공에서 이탈 후 최대 1분 정도 낙하하지만 윙슈트는 길게는 2분까지 비행할 수 있다. 윙슈트의 비행 중 속도는 시속 150∼230km. 활공비는 2.5 정도로 1m 아래로 내려갈 때 2.5m 앞으로 날아간다는 뜻이다. 날다람쥐의 활공비는 2가 조금 못 된다.
윙슈트는 종류가 많다. 작은 옷에서 시작해 점점 큰 옷으로 옮겨가는 것이 일반적. 옷이 클수록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방향과 속도가 예민하게 바뀌기 때문. 가격은 200만 원대. 낙하산은 필수장비지만 500만 원 내외의 고가여서 배울 때는 중고를 사거나 빌리는 경우가 많다.
윙슈트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연관 검색어가 사고에 관련된 것들이다. 정용상 교관은 “낙하산이 펴지지 않을 확률은 번개 맞을 확률보다 작다. 안전 수칙만 지킨다면 줄 하나로 떨어지는 번지점프보다 오히려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