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카페]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4일 03시 00분


美 예술가 4인을 통해 본 외로움의 다양한 모습들

영국의 출판 전문 잡지 ‘북 셀러’는 2월호 기사에서 올해 출판계의 키워드로 ‘정신 건강’을 꼽았다. 지난해 심리학 부문 책 판매는 전년보다 5% 늘었고 정치권은 2020년까지 정신 건강을 위해 연간 10억 파운드(약 1조65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자는 법안을 내놓았다. 펭귄출판사는 건강 관련 책만 취급하는 ‘펭귄 라이프’라는 브랜드를 만들기도 했다.

최근 영국에서 정신 건강 관련 책 중에서 단연 화제가 된 책은 작가이자 비평가인 올리비아 랭이 지난달 출간한 ‘외로운 도시(The Lonely City)’다.

이야기는 영국인 랭이 사랑을 좇아 미국 뉴욕으로 이주를 결심하면서 시작된다. 불같은 사랑에 빠진 그녀는 남자친구와 함께 뉴욕에서 살려고 영국 생활을 정리한다. 하지만 이주 직전 남자친구는 변심하고 그녀는 버림받는다. 그러나 랭은 실연에 상관없이 뉴욕이라는 새로운 도시로 떠난다.

뉴욕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건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를 얻은 그녀는 몇 개월간 작은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공원을 산책하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쌓아올린 벽에 자신을 가뒀고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망상 또한 심해졌다. 화려한 뉴욕과는 달리 그녀의 내면은 더없이 초라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미술관에서 만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그 후 2년간 그녀는 뉴욕에서 몇몇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에 빠진다. 그녀는 그들에게서 외로움의 조각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는 힘을 얻는다. 랭의 내밀한 감정 고백을 담은 이 책은 외로움에 대한 정신과적 고찰이자 현대 미국 예술을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외로운 도시’는 크게 네 명의 현대 미국 예술가를 소개한다. 고독한 현대인을 가장 잘 묘사한다고 칭송받았던 에드워드 호퍼, 팝아트의 선구자이자 엄청난 명성을 누렸지만 실은 기계 뒤에서 외로움을 숨겼던 앤디 워홀, 죽을 때까지 혼자 사는 삶을 택했던 헨리 다거, 에이즈 운동가로도 유명했던 데이비드 보이나로비치 등이다.

그녀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외로움을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뿐 아니라 사회, 정치적 터부나 낙인과도 연관시켜 보여주는, 한마디로 ‘외로움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예술가들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책 말미에서 “보통 외롭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 관계 속에서 이를 치유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외로움을 극복하려면 자신의 욕구와 본모습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예술을 통해 이를 깨달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선풍적 인기는 현대인이 얼마나 고독하고 이를 극복하고 싶어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
#올리비아 랭#외로운 도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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